뮤지엄 산 따라 걸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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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걸음으로 마음을 따라 산책하십시오.’라고 쓰여있었지만 느리게 걷진 못했다. 1박 2일로 강릉 커피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뮤지엄 산에 대해 입소문을 많이 들었다. 다녀온 지인들마다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라 했다. 아침 일찍 강릉을 출발해 시간을 쪼갰지만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은 2시간뿐이었다. 산속으로 산속으로 이런 산속에 무슨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있을까 싶었다. 입장료도 비쌌다. 한솔 문화재단에서 운영한다 했다. 원래 개인이 하는 갤러리나 박물관은 좀 비싼 편이긴 하다. 비싼 입장료만큼 뭔가 있을 것 같아 은근히 기대는 됐다.

웰컴센터를 나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갔다. 군데군데 특색 있게 만든 조형물 사이에 패랭이꽃과 자작나무 숲이 우거진 플라워 가든이 펼쳐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부가 꽃밭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 다음에 손자가 태어나면 꼭 와야지 생각하며 잰걸음으로 걷다보니 눈앞에 빨간 아치가 나타났다. 꽃잎 왕관 같은 아치 둘레에 맑은 물이 흘렀다. 꼭 야외 결혼식장 같다. 아름다운 한쌍의 신랑 신부가 저 멀리서 걸어올 것 같은 착각에 빠져 한참을 바라봤다. 그렇게 워터 가든을 지나 본관으로 들어서니 안내 표지판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길을 잃기 십상인 미로 같은 공간들이 기다리고 있다.

뮤지엄 산(Museum Space Art Nature)은 미니멀한 건축물의 대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거였다. 안도 타다오는 이 부지를 보고 아름다운 산과 자연의 아늑함을 느꼈단다. 그리고 그가 받은 인상을 그대로 건축에 반영했다. 대지와 하늘,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본관은 네 개의 윙(wing) 구조물이 사각, 삼각, 원형의 공간들로 연결되어있었다. 그동안 잊고 지낸 삶의 여유와 자연과 예술 속에서 휴식을 선물하고 싶은 건축가의 마음이 담겨있단다. 그래서일까? 단순하면서도 이 미로 같은 공간을 돌아보는데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했다. 2시간이라는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도 아무 걱정 없이 시간을 잊어버렸다. 그렇게 종이박물관과 미술관, 박남준 전시관과 트라이앵글 코트를 둘러보고 야외에 있는 스톤 가든으로 나갔다. 설치예술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보려면 뜨겁게 달구어진 돌무덤들을 지나야 만 했다.

쨍쨍한 햇빛이 내리 꽂히는 한 낯, 신라의 고분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스톤 가든을 걸으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빛으로의 여정’을 경험하기 위해선 불편과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제임스 테렐의 작품들은 감상이라기보다 체험이었다. 독실한 퀘이커교도였던 부모님에게 받은 정신적 수련과 엄격한 교육, 거기다 천문학과 심리학, 미술, 수학을 심도 있게 연구한 그의 열정이 작품세계를 완성하는 자양분이 되었단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작품에 빠져들었다.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스카이 페이스(Skypace), 천국의 계단 너머 이상 세계를 꿈꾸게 하는 호라이즌룸(Horizon Room), 어두운 통로를 지나 마주하게 되는, 빛이 만들어낸 모호한 경계 웨지워크( WedgeWork)와 시시각각 다양한 색으로 변하는 스크린과 그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 바라보는 빛의 향연 간츠펠트(Gazfeld). 하늘과 빛과 어둠속에서 마치 우주 공간을 여행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순간들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오묘한 세계 빠져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약속한 시간은 훌쩍 지나버렸다. 다녀온 지인들마다 이구동성 다시 와보고 싶다는 말을 나도 중얼거리고 있었다. 다음엔 시간을 많이 가지고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마음을 따라 산책해야겠다고…….

 

 

hanregina

겉모습과 달리 빈틈 많고 털털한 사람. 17년째 수필을 공부하면서 수필집 '가시연 빅토리아' 겨우 한권 냈다. 10년동안 부천시청 복사골기자로 활동하다가 이제 시민 만화기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내 주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카툰으로 표현하고 싶어 '열공' 중이다. hanregina@cartoonfellow.org

한 성희뮤지엄 산 따라 걸어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