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앗간에 참새가 없고 다방에 커피가 없지만 동네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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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의 강릉은 이별의 장소다.

특히 경포대의 밤바다는 이별을 더욱 참담하게 짓눌렀던 칠흑과 다르지 않았다. 군입대를 며칠 앞두고 친구들과 찾았던 강릉 경포대 밤바다를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두려움, 아쉬움. 그리고 이별의 고통. 나와 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눈알을 부라리고 있는 입대 영장만 없었다면 얼마나 낭만적이었을 것이며, 얼마나 뜨거웠을 바다란 말인가.

1988년의 기억에 존재하는 강릉과 경포대는 그렇다. 정확히 30년이 지났다. 이젠 그 기억을 완전히 지워버려도 좋을 만큼 아름답고 명징한 기억을 담아 왔기에 강릉에 대한 편견을 버릴 것이다.

꽤 오랜만에 찾은 강릉은 품격이 있었다. 암담한 이별을 앞둔 바다에 불과했고, 까짓거 좀더 쳐주면 오죽헌과 선교장이 유명하다. 그리고 해송이 그럭저럭 펼쳐져 있던 바다 뒤편에서 입에 넣던 순두부의 슴슴한 맛밖에 떠올릴 게 없는 곳. 보잘 것 없는 기억만 가졌던 내게 오래된 동네, 명주동이 품격을 선물했다. 덕분에 다시 찾을 땐 더 즐거울 것 같다.

강릉의 오래된 동네 명주동.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다가올 미래의 풍파에 의연하게 대치하고 있는 동네다.

명주동의 과거를 버티고 있는 몇 군데 포인트가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봉봉방앗간이다. 견뎌온 세월을 짐작할 수 있는 겉모습과 달리 명주동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힙한 공간이다.

*홍상수의 고해성사적(?) 영화라고 오해 받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 배경 중 하나였던 강릉 명주동의 봉봉방앗간 앞에서 영희가 불륜의 무용함과 부끄러움을 되새기며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다. 그들의 사랑이 한 가치의 연기만큼 가벼운 것은 아니었을 텐데.

아주 오래 전엔 참새가 때마다 들러서 배를 채우고 가던 진짜 방앗간이었고, 지금은 커피를 팔고 여러가지 다양한 전시와 문화를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방앗간의 자격을 잃고 나서 10여년 동안 방치되었던 건물은 누군가에 의해 새생명과 새 임무를 부여 받았다. 이런 스토리텔링만으로도 봉봉방앗간은 유명해지기에 충분한 자격을 얻었다.

커피의 도시로 급부상한 강릉.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마다 생겨나는 수많은 강릉의 카페들이 있다. 그러나 분명 봉봉방앗간은 그것들과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근대건축물의 외형을 훼손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도 좋고, 원래 방앗간이었던 곳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카페 이름을 지은 것도 좋고, 문화와 예술을 품고 있는 것도 좋다. 핸드드립 커피만을 고집하는 덕분에 당연히 커피맛도 좋지 않을까.

그래서 다르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그랬듯 봉봉방앗간 앞에는 자전거가 딱 1대 필요하다. 그래야 봉봉방앗간스럽다. 그 오래 전 참새들이 들르던 곳에 이젠 자전거가 들러준다.

18세기 유럽. 그 무렵부터 유행이 시작됐던 유럽의 카페는 남자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금녀의 구역이다. 여자들도 사교를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 남자들의 험담을 늘어놓을 공간이 필요했을 텐데. 그러면 어디서 모였을까? 당시의 여자들은 집에서 모일 수밖에 없었다.

이 모습은 유교의 생활 관습이 지배하던 우리의 과거의 장면들과 겹친다. 우리 조상, 선비 사대부들이 얼마나 여인들을 하찮게 여겨 왔는가. 정겨운 느낌을 떠올릴 법한 우리네 ‘사랑방’도 담론을 즐기는 장소였지만 실상은 여자들에겐 절대 금지 구역이었다.

명주동엔 봉봉방앗관과 더불어 또 하나의 인상적인 곳이 있다. 1959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는 청탑다방이다.

청탑다방.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 유추해볼 수 있는 단서가 있다.

앞서 언급한 18세기 카페의 이야기로 잠깐 다녀와보자. 카페에 출입이 금지된 여자들은 끼리끼리집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차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문학과 예술을 논하고 미술 작품을 보고 품평을 했을 것이다. 이런 모임을 싸롱이라고 했다. 대개의 여자들은 이런 모임에 참석할 때 주로 검은 양말을 신었는데, 일부 리더적 경향이 강하거나 개성이 짙은 여자들은 푸른 양말을 즐겨 신었다고 한다. 이들을 블루 스타킹 소사이어티(Blue Stocking Society) 라고 불렀다. 카페에서 향 좋은 커피를 나누며 자기들만의 리그를 향유했던 반페미니스트적 심성의 남성들은 이런 여자들이 당연히 못마땅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비아냥거리며 부르는 말로 이 푸른 양말(blue stocking)’을 갖다 붙였다.  ‘지식과 문화 예술을 탐미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 쓴 것이다. 얼마나 옹졸한가. 그리고 푸른 양말은 동양에서 한자어로 ‘청탑(靑鞜)’이라는 말이 대치됐다. ‘푸른 양말’을 한자어(語)로 만들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만하다.

명주동의 청탑다방의 가게 작명도 이 단서와 왠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기 강릉 명주동에도 청탑다방이 있고, 서울 명동의 한복판에도 일제 시대의 경성 멋쟁이들이 드나들던 청탑다방도 있었다.

지금은 세월의 무게와 현실의 회계장부를 견디다 못해 2011년부터 영업을 종료한 상태다. 이렇게 매력적인 근현대 건축물이 아무 기능도 못하고 있다니 애석하다. 후문에 의하면 영업부진으로 폐업을 한 것은 맞는데, 건물에 대한 권리 관계가 너무 복잡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라 한다.

몇몇 초로의 신사들이 청탑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함경도에서 피난와 자수성가한 박갑철 씨도 있고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을 할 지역 유지 오만득 씨도 보인다. 또 강릉에서 한가락 필명을 날리고 있는 시인 고구만 선생도 보인다.
저녁 식사겸 거나하게 한잔 걸치고 나서 커피를 마시고 한바탕 썰들을 풀려고 모여든 것이다. 과연 강릉의 정치 1번지다운 모습이다. 다방 안 난로 옆의 따뜻한 자리들은 이미 먼저 온 신사들과 노인들에 의해 점령당했지만 뭐 어떠랴. 단아하게 늙어가고 있는 청탑다방의 여사장님이 이들을 반갑게 맞으며 자리를 안내한다.

그런데 이젠 청탑다방에서 커피를 마실 수 없다. 다방에 커피가 없으니 이젠 무어라 불러야 하나.

*이 낡은 건물이 한때 강릉의 유명정치인들과 유력 인사들, 문화, 언론계 명망가들이 모여 앉아 커피를 마셨던 청탑다방이다. 이곳이 청탑다방임을 알리는 간판이 두 개 있는데, 파란색 간판은 청탑다방이라서 너무 자연스러운데, 출입구 위에 있는 빨간색 바탕의 간판은 어색하다. 왜 이렇게 배치를 했을까. 빨간 알약, 파란 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인 네오의 운명과 맞닿은 것은 아닐까?

강릉 명주동의 골목길.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동네 주민들의 사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군데군데 아직 형체를 보존하고 있는 적산가옥도 있고, 끼니 걱정하며 살던 시절의 주택도 개발이 안 된채 버티고 있다. 누군가의 수고 덕분으로 골목길을 꾸미는 그림도 있고 예쁜 화분들도 많다. 그러나 늘 그래왔듯이 돈의 논리로는 이곳을 이대로 둘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곳에 터를 지어 살고 있는 사람들의 등을 떠밀어 떠나게 할지도 모른다.

기회가 되어 다음에 이곳을 찾았을 때 몰라보게 달라지지만 않길 바랄 뿐이다.

 

글 / 김현국 (만화 콘텐츠 기획자, 스튜디오달 대표)

 

 

현국 김방앗간에 참새가 없고 다방에 커피가 없지만 동네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