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미동 새로읽기 – 소설속의 원미동과 실재하는 공간 원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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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원미동 사람들]의 안과 밖을 구분 못한 채 지엽적인 문장과 사건을 부각한 어설픈 평론과 기록들이 지금도 인터넷을 부유하고 있습니다.
[원미동 새로 읽기] 칼럼은 8년 동안 원미동 주민으로 살면서 누구보다 원미동을 사랑한 양귀자 작가에 대한 새로 읽기 를 주제로 계속 연재될 예정입니다.
지금.. 그녀의 목소리에 다시 귀 기울여주세요.

소설 속의 원미동과 현실의 원미동은 각각 다른 지역인가 하는 의문이 나온다. 혹은 작가인 내가 현실의 동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보다 궁핍한 허구 속의 동네를 형상화했다는 의견도나온다.
두 가지 모두 분명 아니다. 내가 열한 편의 연작으로 묘사해낸 원미동은 지금 내가 엎드려 있는 이 동네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더 나아가서,원미동보다야 잘 사는 동네라고 자부하는 당신들의 동네, 그 이웃 어디와도 다르지 않다. 60년 대와 70년대에 걸쳐서 특별시 변두리에 형성된 동네가 달동네의 피폐한 삶이었다면,80년대에 들어와선 달동네의 삶의 보편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특별시 변두리의 이곳저곳에 원미동들을 양산했다.

이 시대의 평균치 삶이, 만연되어 있는 정신의 오염이,경제의 불균형으로 빚어진 인생의 기복이 골고루 배어있는 평균의 동네이다.
….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윈미동의 그 겉과 속이 다른 데서 오는 이질감은 이사회의 겉모습과 안을 들여다볼 때와 아주 흡사하다.
일제의 침탈을 거쳐 강대국 주도의 경제정책에 순응하여 재벌만 키우는 이 시대의 몇십 년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경제 정책으로 겉모습은 번드르르해졌는지 모르지만 그 내용물은 여전히 황량하기만 한 현실의 모습이 원미동에 있다.
이 사회의 발전과정과 원미동은 언제나 같은 궤에 있다.

그래서 원미동은 단순한 고유명사를 뛰어넘어 사회의 보통명사로 남겨지는 것이다.
-양귀자, 1989년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 에피소드 “작별의 시간”에서 발췌

coreacartoonist

이코노텍스트에 무지 관심이 많습니다.

이 원영원미동 새로읽기 – 소설속의 원미동과 실재하는 공간 원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