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 강릉 #12 책,음악,커피 그리고 사람이 있는 느낌이 있는 문화공간,’웨이브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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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첫 눈에 반했었다.
SNS에서 본 한 장의 사진.
통유리로 된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길게 드리워진 블라인드 사이사이를 뚫고는
웨이브 라운지의 잿빛 바닥으로 쑥 들어와 만들어내는 음영이
마치 한 장의 멋진 드로잉 작품을 보는 듯했다.
그 멋진 광경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인스타에서 본 다음날 오후쯤엔가 가보았을 땐
이미 사진 속 음영을 만날 수가 없는 시간이었다.
여쭤보니 카페가 오픈 하기도 전인 오전시간에
그렇게 카페 안을 뚫고 길게 햇살이 들어온다 했다.
오픈 전이지만 그 시간에 와봐도 되요? 라는 말이 입속에서 근질근질했지만…
막무가내 진상손님이 될 듯하여 꾹 참았다.

비록 그 햇살은 못만났으나 이 카페의 첫인상은 내겐 온통 호기심 천국 같은 곳이었다.
카페 한쪽 벽면에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는 원목책장에
서점에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잔뜩 차지하며 눕혀서 진열되어있을법한 요즘 트렌디한 책들이
꽤 여럿 꽂혀있었다.
처음엔 판매하시는 건가 했다.
읽어봐도 되냐고 했더니 오시는 손님들이 마음껏 읽으시라고 놔둔거라고 하셨다.
아직 펼쳐본 느낌도 채 안남겨진 새책들도 많았는데 너무 신났다.
이게 왠떡인가 싶었다.
서점에서 한번쯤 들었다놨다했던 읽어보고 싶었던 책들.
디자인이나 내용이 꽤나 흥미로운 책들.
대표님의 취향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각종 매거진들.
훑어보는 재미가 넘 쏠쏠해서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을만큼 이곳에서의 시간이 좋았다.

-웨이브라운지는
책,음악,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커피와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입니다.-

라고 이 카페의 정체성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게끔
잘 보이는 곳에 활자로 드러내놓고 있었는데도
종이위에 적혀진 활자가 막상 이렇게 내게 실현되어 누리고 있으니,
뜻하지 않은 선물에 기분 좋으면서도 슬쩍 미안해지는 것처럼
커피 한잔에 너무 과분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래도 그냥 문화공간라고 하기엔 보다 많은 함의를 담고 시작한 곳 같았었는데,
알고보니…역시나.
로컬 문화 프로젝트와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웨이브컴퍼니라는 회사가
오프라인 사업체의 하나로 만들어 운영중인 카페였다.

미국 젊은이들이 가장 살고 싶어한다는
슬로우라이프와 트렌디한 문화코드가 공존하는
미국의 포틀랜드처럼..
강릉이라는 이 도시를 브랜딩화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크레이티브한 컬쳐 프로젝트와 비즈니스 모델로 지역사회에 문화적인 파동을 만들어내고
주민들과 그 문화의 흐름을 공유하고자
네 명의 젊은 청년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웨이브 컴퍼니.

이 회사의 김지우 대표는
겉모습은 사회초년생 비쥬얼인데 이미 창업과 엑싯도 여러번 경험한 벌써 레퍼런스가 꽤나 쌓인 멋진 청년이었다.
어떻게 강릉에서 이런 일을 시작했냐고 했더니
강릉이 고향이라고.
물론 서울에서 일하다가 이곳으로 다시 컴백한 까닭이 단순히 강릉이 고향이라는 이유보다는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봐도 아이템이 풍부하다는 판단이 더 중요하게 작용했을 듯 싶지만,
어디서나 능력자로 살아갈법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회귀본능은 이럴 때 참 반갑게 느껴진다.

알고보니 나와은 서로 일면식도 없던 때부터 이미
모처에 사무실 입주 신청을 같이 내면서 경쟁자로 만난 사이였었다.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 팀의 이력을 슬쩍 담당자로부터 건내듣고는 나의 탈락을 매우 쉽게 예상했지만
나와 잠시나마 경쟁했던 분들이 이 정도로 멋진 분들이란 게 내심 뿌듯할만큼
신선한 컨텐츠들로 강릉의 문화지형에 조금씩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웨이브 컴퍼니의 웨이브 라운지.

오픈한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이미 팬덤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어
이 공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웨.라. 라는 애칭으로 불리운다.
웨라에서는 책도 마음껏 볼 수 있지만
음료 한 잔만 시켜놓고도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해도 되는
강릉 유일의 코워킹스페이스 카페이다.
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셜클럽들도 운영중인데
심도있는 다양한 북클럽들과 영어클래스 등 자생적인 모임들을 통해
이곳이 강릉의 문화 컨텐츠와 흐름을 양산해내는 진원지로 만들어나가려고
꾸준히 다양한 시도들을 모색중이다.

네 명의 팀원중 한 분은 디자이너로 참여중이서 세 분이 주로 카페에 계시는데
그동안 평일 낮에만 주로 가서 세분이 함께 하시는 주말의 모습은 아직 뵌 적이 없지만
평일에 만난 풋풋하고 훈훈한 젊은 두 남자가 이 카페에서 만들어내는 특별한 아우라는
꽤 신선하게 느껴진다.
이 카페는 전체적으로 미니멀하고 깔끔한 디자인으로 되어있는데
내부 비주얼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시멘트 느낌이 만들어내는 시크한 분위기와
두 분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멘트로 마감한 카페 내부에 한쪽 벽면은 톤다운된 짙은 청록빛으로 페인팅되어있다.
내가 좋아하는 컬러인데,
이렇게나 큰 면적으로 만나게 되니 더 멋져 보인다.
그리고 청록빛 벽색깔과 극명한 색상대비를 이루며 존재감 있게 놓여진 심플한 다홍빛 스탠드가 눈에 확 들어오고 바로 그 옆으로는 프로젝터로 벽면에 뮤직비디오가 상영되고 있다.
일반적인 흰 벽이 아니라 청록색 벽에서 상영되니
어떤 뮤비라도 그림처럼 보여질만큼
비쥬얼의 예술성을 증폭시키는 느낌이다.

이곳에선 항상 비슷한 분위기의
들으면 마음이 일순간에 촥 가라앉는 듯한 음악들이 흘러나온다.
잿빛 공간에서의 잿빛 음악을 들으며 커피 한잔과 함께 책을 넘기는
그 느낌이 나는 너무 좋다.
혼자이거나 아니면 주로 조용조용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들이 계실때가 많아서
그 고요한 느낌이 쉽게 깨어지진 않는데,
공간이 넓고 천장도 높다 보니
손님들의 대화의 톤이 높아지거나 원두를 갈 때 들려지는 소음아닌 소음이
거슬릴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만의 이 멋진 아우라를 나는 너무 사랑한다.

이곳에 올 때마다 코워킹스페이스니까 맘놓고 그림작업하려고 노트북에 아이패드에 짐을 잔뜩 싸들고 오긴 하는데
의도와는 달리 아직까지 이곳에 와서 그림을 제대로 그려본적은 없는 듯하다.
일단 이곳에 들어서면
평균적인 입맛에 맞게 잘 블랜딩된 이곳의 커피를 한잔 주문한 후에
바로 책장 앞부터 기웃거리게 되고
미미해보이나 금새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업데이트된 책의 목록들부터 먼저 살피게 되고
흥미를 끄는 책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넘겨보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런저런 인쇄물들을 들춰보거나
아니면 대표님과 이런저런 공통의 관심사들로 이야기를 나누느라
일은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린다.

공간이 주는 힘.
이 공간의 특별한 아우라덕분에
집에도 책이 있고 커피가 있고 음악이 있지만
이 곳에서 누리는 그 모든 것들은
한층 더 짙은 의미가 부여되는 듯하고
참 강렬해서
그림 작업이라는 내 최고의 우선순위조차
뒤로 밀리기 십상이다.

가끔씩
일에 지칠때 훌쩍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듯이
이 카페로 떠나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건 아무래도 이곳에 올때마다
여행지에서나 얻을 법한 쉼과 여유와 사람과의 만남을 내가 이 곳에서 누렸기 때문인 듯 싶다.

코워킹스페이스 공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쉼이 있는 이 공간.
강릉에 문화지수를 한층 높여주는 듯한
이런 곳이 있다는게 내심 뿌듯해지는 이 카페.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쉬고 싶은 사람에게도
모두 다 만족감을 줄수 있는 이곳.
이 카페만의 특별한 아우라 한번 경험해보시길.

reillust

바다,커피,음악,꽃,좋은 글...을 좋아합니다. 특히 그림그리는 걸 많이 좋아합니다. illustrator/cartoonist

이 현정카페인 강릉 #12 책,음악,커피 그리고 사람이 있는 느낌이 있는 문화공간,’웨이브라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