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경리의 청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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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5월의 어느 날 어슬렁 청계천 투어에 올랐다. 경상도 깡 시골 출신인 내게 서울은 가깝고도 먼 도시다. 20대부터 서울과 경계인 부천 하고도 역곡에 살고 있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울 마실을 가지 않는다. 굳이 인 서울을 하지 않아도 볼거리 즐길 거리가 부천에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계천은 꼭 가보고 싶었다. 동대문운동장을 헐고 세운 역사문화공원과 디자인플라자의 위용도 보고 싶고 맑은 물이 졸졸 흐른다는 청계천변을 걸어보고 싶었다. 1978년 서울에 처음 올라와 청계천 헌책방을 많이 다녔다. 가난하고 책 욕심 많은 학생에겐 그만한 안식처가 없었다. 결혼 후에도 가끔 청계고가 밑으로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과 광장시장, 동대문시장을 둘러보며 쇼핑으로 하루를 보냈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마음에 드는 좋은 물건을 싼값에 살 수 있었다. 청계천 하면 인도(人道)의 반을 차지하며 내놓은 물건들 하며 좁은 골목들을 헤치며 걷던 많은 인파들이 생각난다.

2003년인가 청계천 복원사업의 시작으로 청계고가를 철거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교통이 통제된 청계고가에 올라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다리에서 사진을 찍고 걷는 시민들의 모습이 신문에 실렸다. 그 후로 청계천을 못 가봤다. TV에서만 부분적으로 봤을 뿐이다.

1971년에 만들어진 청계고가로, 2003년 철거되었다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청계천 고가 철거

기념으로 남아있는 철거되지 않은 청계천 고가도로

오전 10시, 상왕십리역에서 ‘만저봐’ 식구들과 만났다. 오늘 투어는 동대문 역사박물관에서 시작해 동대문 역사공원과 성곽 길, 버들다리와 광장시장을 지나 천변을 걸어 종각까지 갈 예정이다.


청계천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미래를 전시하고 있다는 박물관에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청계천 이야기와 구보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이 전시되고 있었다. 원래의 청계천은 발원지 백운동천에서 실핏줄처럼 이어진 30개의 개천이 모여 이루어 졌고 24개의 다리가 놓여있었단다. 본래의 명칭은 ‘개천’이었는데 1914년부터 ‘청계천’으로 불렸단다. 그동안 몰랐던 청계천의 역사를 더듬다가 소설가 (고)박경리 선생님의 기고를 읽었다. 뜻밖이었다. 선생님과 청계천이 관련되었다니….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청계천 박물관

 

‘청계천 복원, 역사의 복원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양보했습니다. 그러나 사업의 핵심은 개발이었습니까?’

 

생계수단을 내어놓고 협조한 청계천 노점상 대표의 성난 목소리다. 이들 민초의 충정과 분노에 대하여, 청계천 복원에 다소나마 관여한 만큼 나는 민망하고 부끄럽다. 

청계천 사업을 주관하는 사람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시장은 맹세코 정치적 목적을 떠나 이 대역사를 진행하고 있는지, 그렇다 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 겨울밤 가등 밑에 웅크리던 노점상들이 그 빈한한 생계수단마저 내놓은 것을 생각한다면 그들 희생에 등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본부장 역시 이해와 상관없이 복원공사에 몰두하고 있는지, 그렇다 한다면 그도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 지식인의 양심은 이 시대의 등불이니까. 

참, 말을 해놓고 보니 멋쩍고 찬바람이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다. 어쨌거나 그 숱한 개발과는 달리 청계천의 복원에는 우리 민족의 얼과 정서를 살리는 숨은 뜻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정치적 의도 때문에 업적에 연연하여 공기를 앞당긴다면, 결과가 복원 아닌 개발이 된다면 오히려 그것이 빌미가 되어 시장의 정치적 역정에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또 만일, 추호라도 이해라는 굴레에 매달려 방향을 개발 쪽으로 튼다면 본부장 역시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그는 그렇다 치고 납득이 안 되는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복원 전문도, 토목 전문도 아닌 조경전문가가 어찌 총책임을 맡았는가 하는 점이다. 옛날, 큰 건축공사를 총괄하는 도편수(도목수)는 재상감이라 했다. 나라에 바치는 정성과 사물을 보는 안목을 따졌던 것이리라. 

두 번째 납득이 안 되는 것은 ‘청계천 복원 사업 설계보고’에 관한 것이다. 항목별로 돼 있는 것을 보니까 하천 분야가 7페이지, 하수도 분야가 3페이지, 유지용수 분야가 4페이지, 도로 분야가 5페이지, 교량 분야가 22페이지, 다음 조경 분야는 압도적으로 27페이지에 이르고 있다. 

조경전문가인 본부장은 아전인수를 일삼은 것일까. 조경의 예산이 도시 얼마인지 궁금해진다. 주객이 전도되어도 유분수,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예산이 넉넉지 못할 경우 조경은 안 해도 되는 부분이다. 

그것은 겉치레일 수도 있고, 청계천과 비슷한 프랑스 파리의 센강에서 나는 조경의 흔적을 보지 못했다. 화면을 통해서 자주 접하게 되는 여러 나라 수도를 끼고 흐르는 유명한 강들도 그러하다. 강변은 탁 트여 있을 뿐, 기억에 남은 것은 라인강의 인어상 정도다. 

물길을 잡아주고 홍수에 대비하는 하천 분야, 강물의 오염을 막기 위한 하수도 분야, 교통을 원활하게 하는 교량 분야, 그런 것을 튼튼하게 하면 되는 거지, 조경은 세월 따라 자연이 만들어 주게 되어 있다. 

앞서 도편수의 안목을 말했는데 우리 문화의 진수는 생략이다. 생략은 저 광활한 지평선 수평선, 우주와 지구가 맞닿은 곳의 균형과 강건함에 다가가고자 하는 정서이며 소망으로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대단히 높은 우리민족의 감성인 것이다. 

그리 크지도 않고 넓지도 않은 공간인 청계천에 덧붙이고 꾸미고 구조물이 들어앉을 조경은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복잡하고 어지럽고 규격화에 지친 도시인들은 단조로운 여백 속에서 쉬어야 한다. 야하게 분바르고 장식을 주렁주렁 매단 여인보다 소박하고 품위 있는 어머니의 품을 생각해 보라. 

시냇물에 분수가 가당키나 한가. 설계를 보아하니 요란스러운 교량도 몇 개 있던데 청계천이 잡탕이 될까 두렵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원 문제다. 단적으로 말해서 조경 때문에 복원이 희생되고 있는 것 같다. 

복원한다는 풍선은 띄워놓고 수표교 복원은 유야무야, 다른 공사가 진행 중인데 수표교 복원이 결정될 때 진행 중인 공사는 뜯어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복원을 하게 되면 뜯어내야 할 공사를 계속하고 있는 저의는 무엇인가. 그러니까 복원은 안 하겠다는 속셈이며 그 속셈을 감추기 위한 술책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수표교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문화의 자존심이다. 문화재나 유적의 복원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국가적 사업으로 신중하고 철저하며 복원인력 양성에도 막대하게 국가가 투자하는 것이 외국의 사례이다. 결국 청계천은 30여년 전에 첫 개발에 의해 매장되었고 이번에 또다시 개발에 의해 모든 유적은 파괴되고 유실될 위기에 놓여 있다. 

처음, 청계천 복원을 꿈꾸던 몇몇 학자들이 십년 후에나 가능할까, 이십년 후에나, 하면서 토지문화관에 모여 두 차례 세미나를 개최했다. 어쨌거나 그것이 발단이 되어 시작이 된 청계천 복원 사업이다. 

지금의 형편을 바라보면서 미력이나마 보태게 된 내 처지가 한탄스럽다. 발등을 찧고 싶을 만치 후회와 분노를 느낀다. 차라리 그냥 두었더라면 훗날 슬기로운 인물이 나타나 청계천을 명실 공히 복원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몇 년은 더 벌어먹고 살았을 텐데. 노점상인들이 안타깝다.

– 2004년 3월 5일 동아일보 박경리 특별기고

 

노년에 원주에 기거하시며 글이 안 써질 때마다 밭일을 하신다는 선생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자연에는 돌 하나 풀 한 포기, 선생이 아닌 것이 없다는 기사를 읽으며 얼마나 선생님이 생명과 환경에 관심이 많은지 알고 있었다.

선생님은 처음엔 청계천 복원사업에 찬성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맑은 물과 나무가 있고 그 속에서 물고기가 뛰노는 청계천변에 공연장, 미술관, 전시장을 만들어 우리의 특색 있는 문화를 보여주고 시멘트 공간에 갇혀있는 서울 시민들이 숨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이 되길 바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원이 아닌 개발이 되어 가는 걸 보고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금의 형편을 바라보면서 미력이나마 보태게 된 내 처지가 한탄스럽다. 발등을 찍고 싶을 만치 후회와 분노를 느낀다. 차라리 그냥 두었더라면 훗날 슬기로운 인물이 나타나 청계천을 명실 공히 복원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몇 년은 더 벌어먹고 살았을 텐데. 노점상인들이 안타깝다.’고 했다. 얼마나 한탄스러웠으면 발등을 찍고 싶었을까!

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청계천변을 걷는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오후, 나무 그늘이 없어 온 몸으로 해를 받다 보니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래도 물길이 좋아 마냥 걷게 된다. 걷는 도중 몇 개의 다리를 만났다.

광통교, 수표교, 살곶이 다리 등, 모두 새로 만든 거라 했다. 공사 중에 유물들이 상당히 나왔지만 제자리에 가지 못하고 지금도 하수종말처리장에 쌓여 있다. 수표교는 장충단 공원에 원형이 고스란히 남아있단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애물단지였던 청계고가를 허물고 복원을 통해 시민들에게 도심 내의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새로운 관광명소를 만들었다는 평도 받는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약 1억 9천 명의 내외국인이 방문하였다. 도시에 바람 길을 열어 대기 환경을 개선하고 온도를 낮추어 도심의 열섬현상을 줄이는데 큰 기여를 했단다. 게다가 슬럼화 되어가던 구도심을 복원해 환경을 개선시키고 다양한 입지 매력도를 상승시켜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얻었다고 했다.

5.8㎞ 이른다는 아름다운 청계천변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와 오해와 진실이 숨어 있다니….

청계천박물관에 전시된 청계천 복원관련 전시

나는 청계천을 잘 모른다. 그저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 박경리 선생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을 뿐이다. 선생님의 바람대로 맑은 물과 나무가 우거진 생명과 환경이 존중되는 아름다운 청계천을 그려볼 뿐이다. 어슬렁 청계천을 걸으며 제대로 역사공부를 한 것 같아 힘은 들었지만 뿌듯하다.

hanregina

겉모습과 달리 빈틈 많고 털털한 사람. 17년째 수필을 공부하면서 수필집 '가시연 빅토리아' 겨우 한권 냈다. 10년동안 부천시청 복사골기자로 활동하다가 이제 시민 만화기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내 주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카툰으로 표현하고 싶어 '열공' 중이다. hanregina@cartoonfellow.org

한 성희소설가 박경리의 청계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