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슬렁청계천] 삼일빌딩 앞에서, 김중업과 김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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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고층빌딩이 빽빽한 서울이지만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0년대만 해도

30층 이상 되는 고층 건물은 흔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끔 외국인 친구가 오면 필수코스로 놀러가게 되는 청계천.

아무 생각없이 거닐던 곳인데

어슬렁 청계천 팀을 따라간 청계2가는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였다.

 

 

삼일교가 있는 청계2가,

그 마천루의 숲 한가운데 삼일빌딩 이 우뚝 서있다.

반듯하게 자로 잰듯한

검은 성냥갑 같은 삼일빌딩은

우리나라 최초의 고층건물이다.

 

[서울=eoimage] 최준필 기자 =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85 삼일빌딩 전경. 17.08.30. eomaster@eoimage.com

1970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979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31층 높이로, 당시 가장 높은 건물이였다.

지금은 별로 세련되어 보이지 않지만

그 당시에 세운상가, 청계고가도로 등과 함께

‘아,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게끔 느끼는 랜드마크 중에 하나 였다고 한다.

삼일빌딩은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했다.

 

이렇게 근대화의 바람이 시작될 당시

건축가 김중업과 김수근은 건축의 스타 쌍벽을 이뤘다고 한다.

 


▲김중업 선생의 모습

(http://alog.auric.or.kr/YYYDS/Post/8EAFBD58-1BCF-4536-9291-950F5D4B274D.aspx)

 

 

김중업은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 건축연구소에서 4년간 수업하고 귀국하여

수많은 근대 건축물을 남겼다.

김중업은 1952년 프랑스의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를 무작정 찾아갔다.

2개월에 걸친 테스트 끝에 그의 제자로 받아들여졌고,

훗날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는지도 몰랐던 르 코르뷔지에는

김중업 선생을 포함해 오직 다섯 명만을 ‘수제자’로 인정했다고 한다.

김중업은 삼일 빌딩을 비롯해 서강대학 본관, 주한 프랑스대사관, 제주대학본관,

삼일로 빌딩, 육군박물관 등을 설계했다.

그는 1956년 고국으로 돌아와 색깔이 담긴 건축물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박정희와 김중업. 김중업은 박정희 정권의 건축행태를 비판했다.

 

그러나 김중업은 당대 박정희 정권의 블랙리스트였다.

1970년 부실공사의 온상이였던, 이미 붕괴가 예정되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인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한 광주대단지 사건으로 대표되는 빈민이주사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박정희식 도시개발, 건축에 태클을 걸었다.

서슬퍼런 정권에 대항하여 건축방식을 비판한 그는

우리나라 근대건축의 1세대의 스타였지만, 마지막은 비참했다.

설계비도 다 받지 못한채 프랑스로 강제추방 되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쌍벽을 이루던 김수근은 어땠을까?

 

▲김수근 선생의 모습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90202.html)

김수근 역시 근대 건축의 한 축이면서 문화와 예술의 영역과 경계를 허물었다고 평가받는다.

건축 신인이면서 많은 국가적 프로젝트에 관여한 김수근이 주목한 것은

전통과 함께 건축물 안에 담긴 정신문화였다.

인간의 가치를 제일하는 인본주의를 작품에 담았다고 평가받고 있다.

김수근은 서울 율곡로에 있는 건축사 사옥인 ‘공간’을 지었다.

공간 사옥은 지금봐도 세련되고 아름답다.

 

▲서울 율곡동에 소재한 공간 사옥. 김수근의 건축사 사무실로 사용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이 공간 사옥은 2014년 아라리오그룹 김창일 회장이 인수하여 아라리오 뮤지엄으로 재탄생했다.

그 외에도 김수근은 국립부여박물관, 카이스트 본관, 서울대 예술관, 국립청주박물관,

국립과학관, 서울지방법원청사, 지하철 경복궁역사 등을 설계하여

우리나라 역사의 굵직한 건물들 안에 그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는 사실이다.

 

그러던 중 어슬렁 프로젝트 기획자인 이원영 이사님이 보내준 한편의 기사를 읽었다.

 

그런데

내가 잘못 읽은건가?

그 유명한 김수근 건축가가 이 건물을 설계했다고?

 

믿기지 않지만

그 유명한 1세대 근대건축가 김수근은 바로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받다가 사망한 곳이고

수많은 민주화 열사들이 끔찍한 고문을 받았던 곳이다.

 

▲현재는 경찰청 인권센터가 된 남영동 대공분실

 

▲박종철 열사 기념관으로 보존되고 있는 방

 

 

혹자는 묻는다.

건축가의 잘못이 아니고

그 건물을 그렇게 사용한 사람들이 잘못이 아니냐고?

그러나 남영동 대공분실은 설계 자체가

공포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비인간적인 구조로 설계되었다.

 

가늘고 긴 세로 창(밖이 보이지 않도록)이 있는 5층에 10여개의 취조실이 있으며,

건물 내부에는 달팽이관처럼 생긴 철제 계단이 있어 이 계단을 따라

1층부터 5층까지 올라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또한 방이 엇갈려 배치되어있는데 햇볕도 들어오지 않고

수감자들이 마주치지 않게하기 위한 고의적인 ‘나쁜’ 구조였다.

 

▲남영동대공분실의 갈색 벽

▲물고문실

▲좁은 창

▲나선형 계단

▲엇갈린 철문

 

 

그것이 실험이였든

누군가의 의뢰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이든

당시 목적에 맞지 않게 사용되었던 것이든

그는 건축가로서의 품위를 지켰어야 했다.

고통과 공포를 극대화하는 감옥보다 더한 건물의 설계 따위 맡지 말았어야 한다.

건축가는 죽어도 건축물은 세상에 남겨지기 때문이다.

 

이 건물 하나로 그의 다른 빛나는 업적들이 저평가 되는 것은 아쉽지만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이 정말 김수근이라면

그에게 벗겨진 1세대 근대 건축의 거장, 스타 건축가,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 건축가 등의

신격화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그를 설명하는 프로필 안에

남영동 대공분실 설계도 꼭 포함되어야한다.

 

역사 속 인물에 대한 평가는 훗날 이루어진다.

여기 김중업김수근이 있다.

 

누가 옳은가?

누가 그른가?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백지같은 깨끗함이 옳은가?

옷에 똥 안묻고 똥통을 치울 수 없는 그 진실이 옳은가?

 

나라면 어떤 쪽에 가까웠을까?

 

우리는 모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럼에도 끝까지 직업윤리와 ‘인간다움’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던

김중업이 내 눈에는 백배 멋지다.

 

사람의 삶은 유한하지만

사람이 남긴 글과 건축, 예술 작품 등은 세상에 남겨진다.

바로 김중업의 삶이 약 50년이 지나

부천에서 시민 활동을 하겠다고 나선 20대 서블리에게 그런 감동을 준다.

 

어슬렁 청계천에서

건축과 근대사, 

그리고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멋있는 삶을 살수 있을지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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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사이트

-http://www.vop.co.kr/A00001240434.html

-http://m.blog.daum.net/gettok/337?tp_nil_a=2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778687.html#csidx546a52c6e400b29bdfe881391aa60c5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4215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xearch&query=%EA%B9%80%EC%88%98%EA%B7%BC+&oquery=%EA%B9%80%EC%A4%91%EC%97%85+%EB%B0%95%EC%A0%95%ED%9D%AC+%EB%B9%84%ED%8C%90&tqi=TyLbvlpySEKssvlS5msssssssXV-244950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3336239&memberNo=550831&vType=VERTICAL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3336239&memberNo=550831&vType=VERTICAL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4570&cid=59114&categoryId=5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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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독서, 여행 등 좋아하는 것이 넘쳐나 행복한 사람이다. 지금은 채움에서 내가 사는 지역을 좀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드는 상상력을 실험하고 있다.

서보영[어슬렁청계천] 삼일빌딩 앞에서, 김중업과 김수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