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 강릉 #9 익숙한 쉼이 있는 모던한 카페, ‘남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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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동>.

이름부터 맘에 쏙 든다.
어쩜 이렇게 네이밍을 잘했나싶어 볼때마다 감탄한다.

드라마에서 부자 동네 사모님들이
네~평창동입니다. 하며 전화를 받을때 느껴지는…
그 세글자에 꽉꽉 채워 넘치도록 들어간 자부심과 과시욕과는
많이 비켜가있으나,
이 세글자에도 그에 못지 않은 자부심은 느껴지고
거기에 소박함과 정감까지도 묻어난다.

행정상 분류로는 현재 중앙동인데다
옛 명칭으로도 남문동이아니라 이곳은 명주동에 위치해있으나,
비슷한 상호 때문에
길 건너편 동네 이름 남문동을 카페 이름으로 지었다.

몇년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일루수가 누구야?’
개그콘티가 이름만 바꿔 저절로 구현되게 만드는
카페 <남문동>.
커피는 남문동에서 마시자 하면
그러니까 남문동 어디?
라고 백발백중 되묻게 되는
그래서 한 번 들으면 잊어버리는 법이 없는 카페이름, 남문동.

이곳에 오면 난 항상 같은 자리에 앉는다.
생각보다 꽤 넓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매우 듬성듬성 위치한 테이블들 때문에
어디에 앉아야 할지 금새 상황판단이 안되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불안한 시선을 단번에 잡아주는,
여기쯤이 가운데라고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이라도 되는 양
중앙에 떡하니 놓여있는,
사장님이 손수 만든, 멋스런 양방향 책꽂이,
바로 그 오른쪽 4인용 테이블이
내가 항상 앉는 자리이다.

혼자 가든 다른 이와 함께 가든 항상 그 자리에 앉는다.
레트로한 디자인의 블랙 가죽 소파,
원목으로 된 프레임에
딱떨어지는 심플한 느낌의 가죽소파가
집에 갖다놓고 싶을 만큼 내가 넘 좋아하는 디자인인데다
앉아보면 생각보다 너무 편해서 좀처럼 일어나기 싫어지는 곳.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카페 안에 손님이 제법 있을 때도
그 자리만큼은 용케도 떡하니 비어있어서
어떻게 사람들이 이 좋은 자리를 남겨두었을까 의아해하면서도
이 자리가 뺏겼으면 어찌할 뻔 했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며
누가 또 금새 들어올까 싶어
털썩 가방부터 던져놓고 카운터로 주문하러 가곤 한다.

사실 오늘은 다른 카페에 취재차 갔다가
기대보다 너무 아니다 싶어 다소 실망한 마음을 안고
기분전환겸 들른
익숙한 이 카페.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여전히 비어있는 내 자리와
늘 같은 모습 사장님.
익숙한 카페 분위기와 음악이 들려온다.
한순간에 맘이 편해진다.
꽤 좋은 여행이었음에도
며칠만에 집으로 돌아오면
그래도 우리집이 제일 좋다며
나도 모르게 우리집을 향한 때아닌 사랑고백이 냉큼 튀어나오는 것처럼
이곳에서도 딱 그 마음이었다.

한번도 날 실망시킨적 없는 이곳의 아이스아메리카노와
곁들여내주시는,
그닥 먹고싶지 않은데도 자꾸 당기는, 적당한 짠맛의 프레즐과
신선한 맛이 나는 고소한 아몬드를 씹으며
좀 전에 다녀온 카페에서 느낀 실망감을 떨궈냈다.

이곳의 사장님은 손님들과는 딱 필요한 말씀만 하시는 스타일이어서…
선뜻 용기를 내고 있지 못하다가…
오늘은 어쩐지 사장님께 말을 붙여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손님들이 거의 다 가시고 나서야 용기내어 말을 건냈다.

다행히 조금은 쑥쓰러워하시면서도 흔쾌히 이런 저런 이야기들 풀어내주신다.
누가봐도 태생이 바리스타였을것같은 비주얼이신데
원래는 이 자리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시다가
카페를 한 번 해볼까 하고 오년 전에 시작하시게 된거라고.
그러고보니 나도 오픈하던 그 해부터 이곳에 다닌듯하다.
암튼 이십년 이상 바리스타 한길을 걸어온 장인의 냄새가 나는데 참 의외다 싶었다.
더 놀라웠던 건
콧수염도 기르고 머리도 길러 질끈 뒤로 묶어 헤어밴드까지 한
아티스트 냄새 많이 나는 지금의 이 모습이
원래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셨는데,
카페를 하면서 바리스타 이미지를 극대화하기위해
본인이 그렇게 보이도록 이미지메이킹한거라고.
이 분 프로구나.
싶었다.
카페를 하기전 시장조사나 준비과정들을 들어봐도 예사롭지 않다.
카페 인테리어나 구석구석 사장님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고
굉장한 감각의 소유자라는 느낌.
유난히 테이블간의 공간이 넓은 것도 시장조사를 바탕으로 나온 결과물인데
그 점이 이 카페의 특징이 되기도 하고
나도 정말 마음에 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닥다닥 붙어있어 한두시간 앉아있다보면
궁금하지도 않은 옆 테이블의 속사정까지 알게 되는
카페들에 비하면
이곳은 정말이지 클라스가 남다른 곳이다.
공간이 넓다보니
그 여유있는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사용하면 좋겠다고 판단하셔서
꽤 넓은 실내의 벽면은 갤러리로 사용하고 있고
카페 한쪽엔 피아노와 음향시설을 갖춰두고
한달에 한번 시낭송회를 열고
가끔씩 버스킹 공연도 하고 있다.
강릉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작가분들이 주로 전시회를 많이 하고 있고
가끔씩 꽤 유명한 작품들도 전시했었다고.
특별히 기억에 남는건 이년전쯤 한 외국작가의 사진전이었는데
인화지가 아니라 창호지에 인화한 방식이 너무나 특이해서
그 전시를 많이 알리고 싶어 맘을 많이 쓰셨다하시는데
정작 나도 모르고 지나가버린 아까운 사진전이 되버렸다.

강릉엔 유난히 카페를 문화공간으로 겸해 활용하는 곳이 많고
이곳도 그런 공간으로 많이 알려져있는데,
이름있는 작가 아니라도 누구라도 원하면 전시가능한데다
비용도 따로 받지 않으신다.
나에게도 그림 그리시는 분이니 작품 가져와서 전시하시라고
수줍게 미소지으시며 권해주시는데
예술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참 고맙고 따뜻했다.

이런 저런 얘기들
하시고 싶은 말씀도 많으시고
나도 궁금한게 많았는데
다른 카페에서 소진해버린 시간 때문에
아쉬운 마음으로 짧은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
찰나같은 짧은 시간에도
금새 의기소침해질수도 있고
때론 꼭꼭 닫혀있던 실내에 창문을 활짝열었을때
순식간에 밀려들어오는 신선한 공기처럼
단번에 행복해질수도 있는…
참 신비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
난 오늘 그림덕분에
또 그런 귀한 만남을 경험했다.

언젠가 이 카페에
내 그림이 걸리게 된다면,
그 때 걸린 내 그림들이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행복한 만남으로 느껴지게 하는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마음 들게 해주는
이곳 남문동 같은 카페들이
많지는 않아도
강릉에 몇 개쯤 더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친 이들에게
털썩 가서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내가 누리고 있는 이 행복을
다른 이들도 함께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그림에서
조금이라도 그런 느낌이 전달 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reillust

바다,커피,음악,꽃,좋은 글...을 좋아합니다. 특히 그림그리는 걸 많이 좋아합니다. illustrator/cartoo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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