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산 아랫마을 신家네 아침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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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산 아랫마을 아침풍경

21세기 세계화시대에 살면서 6.70년대 얘기를 한다면, 먼 옛날 고리짝얘기로만 들릴 수 있을까. 그리운 시절, 내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수도산아래 보금자리. 그 산 아래를 중심으로 나지막한 산들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둘러싸여 조용했던 골짜기로 기억나는 나의 고향 청수동 안동네 청당골

또한 산자락에 위치한 상수도가 있어 언제나 콸콸 흘러 내려오는 시원한물로 매년 가뭄을 모르고 살았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변두리로 우리오남매가 한 고향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봄이었을까?

그때는 우리나라가 어렵게 살던 시대로 잘살아보자고 외치던 시대로, 6시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아침 방송이 있었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들려~ 하고 물으시는 목소리까지, 마을이장님의 하루일과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곧이어 반복해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변함없이~또~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아 ~이~ 소리~, 또 그 노랫소리가 단잠을 깨워버린다.

비몽사몽 잠결에 시끄러움 속에서도 일어는 나야는데 하며 생각 뿐, 몸과 마음은 귀찮음을 연이어 느끼며 뒹굴뒹굴할 때 빨리 일어나라는 소리도 뒷전이다.

이런저런 소리도 들릴만한데 귀담아 듣지 않는 나와 동생들, 한 이불속에서 꼬물꼬물 거린다, 일어나라는 소리와 자겠다는 소리로 말씨름하며 끌고 당기는 모습은 마치 이불속 전쟁 같았다. 그때 부엌 쪽에서 불호령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드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반면에 동생들의 이런 모습에 담당 언니는 구세주 엄마로 인해 한시름 덜었다는 엷은 미소는 보지 않음에도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엄마의 불호령 때문인지 갑자기 조용해지며 맡은바 충실하려는 우리 오남매들, 맏이인 언니는 이불개기와 요강비우기, (참고로 이전엔 둥그런 요강이 있었는데 밤새동안 남자는 무릎 꿇고 쉬하고, 여자는 요강에 앉아서 쉬했다. 온 식구가 다 볼일을 봤어도 누구도 냄새난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이런 풍경이라면 에쿠쿠 상상에 맡겨야겠다), 바로 위 오빠는 마당 쓸기와 불 때기로 일명 불 지피기였다. 아침은 엄마가 밥하면서 하셨고, 언제나 저녁 5시면 어김없이 놀다가도 들어와서 불을 때야했던 우리집만의 규율, 오빠는 불을 지피기전에 아궁이에 쌓인 재를 삼태기에 담아 퍼내야했다. 지금 내 아들이 이런 상태라면 과연 가능할까? 세 번째인 나는 늘 방청소와 설거지 담당. 방청소야 빗자루 슬슬 쓸고 물에 걸레 담갔다 쓱쓱 닦아내면 되었지만, 설거지는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참 많았다. 설거지를 시키면 화풀이는 언제나 말 못하는 그릇들 이었다. 툭! 툭! 탁! 탁! 덜거덕 거리며 설거지를 하노라면 엄마는 늘 걱정되어 그릇 다 깨지겠다고 야단치시며 싫으면 하지 말라고 까지 하신다. 그땐 하지말라는 소리에 스르르 화가 가라앉는걸 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마 못 말리는 고집 센 둘째딸 이었나보다. 끝으로 내 동생은 룰랄라~

 

그중에 제일 느긋한 분은 바로 우리가 존경하는 아버지.

조용하시다. 큰소리도 없다. 늘 조용조용 하시다.

만저봐의 어슬렁 처럼 이른 새벽부터 동네 한 바퀴를 휘이익 돌고 오신 아버지는 엄마의 식사시간 맞춤도 제때에 따~악이었다.

아마도 무겁지만 둥그런 은색시계가 틈틈이 알려준 덕분도 한 몫은 했으리라. 틈틈이 모아 마련한, 정성이 담긴 엄마의 소중한 선물, 아버지는 아시리라.

드디어 대문 안을 들어오며 우리의 이 광경을 목격하신 아버지는

“아 이눔~들아. 아침 일찍 일어나서 동네한바퀴 돌고 오면, 밥맛이 얼마나 좋은데 아직도 잠만 자고 있어”

하시며 엄마의 불호령에 놀란 우리들의 맘을 달래려고 큰소리를 치신다.

비록 큰소리는 났지만, 따스한 정이 넘치는 아버지라 우리는 늘 평온하게 늘 하던 대로 각자 자기자리에 앉아 일상생활의 아침을 맞는다.

따로 같이 라는 말이 있었다.

각자 정해준 엄마의 준칙, 참 많다. 우선 자리배치부터 일곱 식구 숟가락과 젓가락, 밥그릇까지 모두가 정해져 있는 우리 집만의 규율과 책임과 의무랄까.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엄마였는데 준칙은 엄했다.

그리고 오순도순 식사하며 빼놓을 수 없는 건

아버지의 남은 밥, 아니 우리를 위해 남겨진 노란 계란 비빔밥이었다.

금방 지은 밥으로, 한 주걱 먼저 살짝 푼 밥공기에 계란 한 개를 톡 깨서 놓은 다음 다시 따끈한 밥을 그 위에 덮어 뚜껑을 닫는다. 아버지는 그 밥을 간장을 넣고 비벼 드시다 먹고 싶어 하는 우리들 눈치에 배부름을 핑계로 남겨주신 그 밥은 서로가 먹고 싶어 하는 쟁탈전,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꿀맛이었다. 그때는 쌀보다는 꽁보리밥이 더 많았으니 흰 쌀밥으로 지은 밥에 노랗게 물든 계란밥은 군침을 더더욱 자극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기상부터 아침 식사까지 우리 집만의 풍경은 다시 그려봐도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그 추억이 아름답고 소중해서 난 참으로 행복하고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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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인생이야기를 만화로, 세상 아름다운 마음으로 다양한 가치들과 함께 펼쳐가고 있습니다. 미담, 경험, 생명의 가치 등 올바른 인성이 함께하는 안전한 세상으로... shinyt53@cartoonfellow.org

신 용택수도산 아랫마을 신家네 아침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