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서 독일정통카페를 만나다. ‘유디트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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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오면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그런 착각이 들게 하는 것은
독일 전통 가옥을 본따 만든 카페 외관에서 느껴지는 이국적인 분위기나
정원에 내츄럴하게 심겨져 있는 야생화들.
그리고 카페 내부의 그 많은 앤틱가구들과 앤틱소품들이
만들어내는
차분하면서도 묵직한 분위기가
모든 바쁜 일상도 잠시 잊게 할만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
좀 더 느리게…천천히…가도 된다고…
그렇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년만의 방문이었다.
이 매력적인 카페를 다시 찾아오는데
이년이라는 꽤 긴 텀이 생긴 까닭은
그저 집에서 좀 멀다는 거리상의 이유뿐이긴 했는데…
어찌보면…
거리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접근성의 불리함을 채우고도 남을 어마어마한 메리트가 있는,
이 독보적인 아름다운 지닌 카페를 외면하고 살았던 이유치고는
꽤 궁색한 변명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오랜만에 이곳을 찾아왔을 때
이 카페의 아름다운 전경이 내 눈에 담겨지는 그 순간.
나는 바로 후회했다.
‘그동안 왜 안 왔지?’
‘이렇게 좋은 데를 내가 왜 잊고 있었을까..?’

그것은 마치
평소 좋아하던 연주자가 강릉에서 무료공연하는데
몰라서 놓쳐버렸을때의 그런 아쉬움 같기도 하고..
남들 손에 다 들려있는 인기있는 대박 세일 아이템을
간발의 차로 나만 놓친듯한 억울함 같기도 한…
후회가
마음 속에서 올라왔다.

독일카페,<유디트의 정원>
이 카페의 주인은 독일에서 온 유디트 씨이다.
독일 유학생이었던 한국인 남편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남편을 따라서
멀고도 낯선 이 땅에 온지는
올해로 벌써 18년째.

한국어로 인터뷰를 진행해도 아무런 막힘이 없을 만큼 한국어는 능숙하다.

한국으로 시집와서 처음엔 서울에서 독문과 교수로 일하다
삭막하고 바쁘기만한 도시의 삶이 너무 싫어서,
그리고 한국의 교수 사회에 환멸을 느껴
남편의 고향인 강원도로 왔다.
삼척을 거쳐
강릉에서 카페를 시작한지는 올해로 사년째.

시내쪽도 아니고, 주택가도 아니고, 바닷가도 아닌,
관광지에서조차도 살짝 벗어나 있는 이곳은
지역주민들도 잘 몰라서 못가고,
카페 좋아하는 사람들 정도에게만 알음알음 알려져 있는 곳이다.
그래서 주중엔 손님들이 많지가 않고,
주말에 서울에서 오시는 손님들 덕분에
빠듯하게 카페를 운영해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도 좋은 카페가 있음 당연히 찾아오리라 예상하고 문을 열었다고 하시는데, 지금 생각하면 좀 순진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는 유디트씨.
그럼에도 자연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그 곳이 너무 좋아서
떠나고 싶지는 않다고.
이 카페 유지에 도움을 주기 위해 얼마전에 원주에 2호점을 내고 운영중이신데,
다행히 수익률이 강릉보다는 좋은 편이어서 그나마 이곳 카페 운영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하신다.

여러 가지 힘든 상황인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페를 계속 운영해가시는 이유가 뭐냐고 여쭤봤더니
패스트 푸드점 같은 끊임없이 손님들이 오가는 시끌벅적한 카페 아니라,
천천히… 느리게 커피를 즐기며 휴식을 갖는 독일의 정통 카페를
강릉 사람들에게도 알려드리고
그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하신다.

오시는 손님들이 좀 더 편안하게 다른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프라이빗하게 천천히 커피를 즐길 수 있게끔
모든 테이블들마다 주변엔 앤틱가구들이 파티션처럼 배치되어 있다.
대부분의 가구들은 독일에서 배타고 건너온 것들인데
묵직하고 중후한 느낌이
카페내부에 클래식한 분위기를 짙게 자아낸다.

묵직한 파티션들 덕분에 어느 좌석에 앉아도 아늑하고 분리된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런 장소이면 하루종일 앉아서 커피마시며 그림만 그려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고요하고 차분하다.

문득, 카페도 주인의 성격을 닮는구나 하는 당연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고요히 그림처럼 앉아서 책을 읽다가
손님들이 오시면 소란스럽지 않게 주문을 받고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커피잔에 커피와 쿠키를 내오시는 유디트 씨.
이곳은 그릇들도 모두 독일에서 만들어진 것들, 그리고 앤틱그릇들만 사용하고 있어서
여느 카페에나 있는 계피맛 쿠키 하나도
금테두리로 둘러진, 세월은 느껴지나 여전히 예쁘고 고급스러운 접시에
내어오는 까닭에
흔한 쿠키에서조차도 주인장의 품위와 정성이 가득 느껴진다.
그 계피맛쿠키도 독일산인데 맛은 한국제품과 거의 흡사한 맛이다.
맛의 차이가 없는데도 기어이 고국의 제품들을 고집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고국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리움도 느껴져서 살짝 애잔해지기도 한다.
이 그림에 사용한 펜도 독일제품 이라는 것을 알려드리면
어쩐지 흐뭇해하실 듯하다.

묵직하고 품격있는 실내와는 다르게
정원은 자유로운 분위기다.
야생화로 가꾸어지고 있는 정원이어서
봄이 몇 번 더 지나고 나면 뿌려진 씨앗들이 제대로 꽃을 피워
지금보다 더 생동감 있고 화려한 정원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넓은 정원이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야생화들로 가득찰 때까지
이 카페가 잘 지켜졌음 좋겠다.
그 때까지는 유디트씨가 힘들더라도 부디 잘 꾸려나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독일 정통 카페를 느끼고 싶다면,
혹은 삶에 지쳐 몸과 마음이 좀 쉴 시간이 필요하다면,
강릉까지 왔지만 바다 보이는 카페가 혹시 식상하다면,
꼭 한 번 방문해보시길.

한 번만 와보면
그 다음부터는 아무리 멀더라도
또 오고 싶어지게 될 것이다.
유디트의 정원.
이름만큼이나 특별한 곳.
늘 있던 자리에서 어김없이 피어나는 야생화처럼…
오래도록 이곳에서 커피향이 피어나게 해주기를.

*덧붙임.
아쉽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참 많이 부족하지만…
유디트의 정원 본점이 결국엔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주중에는 문을 닫고 주말에만 영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접근성이 훨씬 좋아진 곳에 유디트의 정원 택지점이 오픈했구요…
본점 만큼은 아니어도 묵직하고 중후한 내부 분위기는 이곳에서도 거의 흡사하게 느껴집니다.
다만 건물 외관부터 이국적 느낌 강렬했던 본점의 분위기와는 괴리감이 상당히 느껴지긴 합니다만…동일한 내부 컨셉과 커피맛 덕분에 카페 안에 머물러 있다보면 본점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택지점은 본점이 주는 아우라를 따라가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주중에 독일정통카페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택지점으로 방문하시면 되고
주말엔 가신다면, 저라면 무조건…본점입니다.

reillust

바다,커피,음악,꽃,좋은 글...을 좋아합니다. 특히 그림그리는 걸 많이 좋아합니다. illustrator/cartoonist

이 현정강릉에서 독일정통카페를 만나다. ‘유디트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