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희의 작가산책 – 시인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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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담쟁이,시인 도종환

그는 정말 진실했습니다. ‘자신의 문학은 가난과 외로움에서 출발했다’는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족은 해체되고 그는 외가에 맡겨졌습니다. 방학 때가 되면 편지봉투에 씌어 있는 주소를 들고 어머니 아버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는 늘 혼자였습니다. 자주 양식이 떨어졌고 낯선 도시의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습니다.
가난 때문에 돈 제일 안드는 학과인 사범대학을 들어갔고, 월세 이천원짜리 단칸방에서 구들장에 온기라곤 느낄 수 없는 냉방에서 잠을 자며 대학을 다녔습니다. 도시락 대신 소주병을 싸들고 일터로 나가는 아버지와 고모네 목욕탕에서 일하는 어머니, 정신지체 장애아인 여동생과 음성 나환자촌에 있는 삼촌, 그에게 대학은 사치였습니다.
그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 들었고 거기서 문학을 만났습니다. 문학을 이야기하고 철학을 논할 때만 그의 눈이 빛났습니다. 결혼 이년 만에 아내와 사별하고 정말 많이 아프고 많이 힘들었을 때도 그를 위로해준 건 시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빈 하늘을 향해 소리칠 때도 시가 대답해 주었습니다. 전교조를 만드는 일에 참여 했다가 감옥에 갔을 때도, 해직 교사생활을 하면서 막막했을 때도 시가 길이 되어 주었습니다.
거리에서 머리띠를 묶으며 함성과 구호를 외치면서 살아오는 동안 거칠어진 심성을 다시 온순하게 감싸준 것도 시였습니다. 이 땅에 가진 것 없이 외롭고 가난하게 태어나 문학을 할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시들이 왜 우리 가슴에 깊은 슬픔의 뿌리를 내리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hanregina

겉모습과 달리 빈틈 많고 털털한 사람. 17년째 수필을 공부하면서 수필집 '가시연 빅토리아' 겨우 한권 냈다. 10년동안 부천시청 복사골기자로 활동하다가 이제 시민 만화기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내 주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카툰으로 표현하고 싶어 '열공' 중이다. hanregina@cartoonfellow.org

한 성희한성희의 작가산책 – 시인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