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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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회의

 

의 어린시절. . .

우리 가족은 여섯 식구였다.

아빠, 엄마, 언니, 오빠, 나, 그리고 동생.

 

아빠

는 거의 매일 퇴근 하여 오실 때

양 손에 무겁게

무언가를 들고 오셨다.

 

퇴근 후 대문을 들어오시는 아빠,

“아빠~ 다녀오셨어요!!”

온 가족이 현관문에서 아빠를 맞이했다.

맞이할 때면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아빠의 손을 보았다.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듯

아빠의 손에는 항상 무언가가 있었다.

어느 날에는 귤, 호빵, 샘베과자 등.

 

덕분에 온 가족은 모여서 간식을 먹으며

왁자지껄 수다를 떨며 웃음 꽃을 피웠다.

 

요일, 나의 어린 시절 매월 마지막 목요일,

우리 가족은 모두가 일찍 집에 와야 했다.

누구라도 어떤 핑계도 되어선 안된다.

왜냐하면 그 날은 우리 가족이 함께 모여

‘가족 회의’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어떤 내용의 회의를 했는지는

솔직히 별로 생각 나지 않는다.

다만 온 가족이 함께 모였고

어른들은 꾀 진지했던 것 같다.

 

그러나 무슨 회의를 했는지

무엇을 회의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와 동생은

그럼에도 가족회의 날이 무척 기다려졌다.

정말 정말 좋았다.

회의 마지막 부분이 특히 그랬다.

 

의하는 타임이 주어지는데

이 건의 타임에는

누구나 솔직하게 누구에게든, 무엇이든

건의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시간에 가장 건의를 많이 받는 사람은 오빠였다.

나와 동생에게 평상시 심부름을 많이 시켰다.

오빠와 나는 나이 차이가 9살이나 났고

그래서 오빠가 심부름을 시키면 감히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때로는 친구 같이 다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있었던 오빠이지만

우리가 숙제를 안 했거나

친구를 데려와 집을 엉망으로 만들었을 땐,

도깨비보다도 더 무서웠다.

 

우리는 너무 어려서

오빠가 우리를 위해서 하는 가르침이나

심부름 등의 유익함보다는 불만일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족 회의 날,

바로 바로 건의 타임!

나와 동생은 이구동성으로 오빠를 향해

적극적인 아니 공격적인 건의를 했다.

 

“너무 심부름을 많이 시킨다.

오빠가 해도 되는 것 같다.”

 

“무섭다. 너무 무섭다. 아빠보다 무섭다.

사랑한다면 자상하게 해줘라.”

 

“오빠도 청소해라.

아침에 좀 빨리 일어나라

엄마 힘들다 ” 등등

 

무엇이든 마구마구 건의 했다.

 

그럴 때면 오빠는

온가족 앞에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고

스폰지처럼 자상하고 부드러워졌다.

물론 3일도 못 가서

다시 무서워지고 엄격해지고

마구마구 심부름을 시켰지만 말이다.

 

완벽주의자 언니 또한 우리의 건의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언니도

유머와 위트로 우리를 설득하며 부드러워졌다.

 

회의가 끝나고 아빠와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노래와 춤을 추어보라고 시키기도 했다.

 

특히, 내 동생은 춤을 잘 추었고

온 가족은 박수로 리듬을 맞추며

함박 웃음 소리와 함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당에는 커다란 해바라기와 청포도 나무가 있던

어릴 적 우리 집 담장 너머로 가족들의 맑고 밝은  웃음 소리가

온 동네, 아니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은 참 민주적이었다.

민주적인 가정을 이끌어가신

멋진 가장, 우리 아버지

 

아버지는 지금 세상에 없다.

그 옛날, 그 시절에 어쩌면 그렇게도 민주적이셨을 수 있으셨는지

참 존경스러운 우리 아버지!

 

립다.

그리워서 아버지 계신 대전에 다녀왔다.

만저봐 4월호 주제 ‘가족’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덕분에 가족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어린시절 가족회의를 그리워해보고

또 존경하는 아버지께 다녀올 수 있었다.

참 감사하다.

 

 

 

오드리

만화, 저널, 시민, 공익, 진실, 전통시장, 청년, 변화, 노인, 장애인, 커피, 가을, 비, 사람, 그리고 부천~ 을 좋아하는 평범한 부천시민 noahne@cartoonfello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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