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튀는 성북동의 문화해설 만저봐-이이사의 독특한 문화탐방, 체력과 함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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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튀는 성북동의 문화해설 만저봐

이이사의 독특한 문화탐방, 체력과 함께하다

 

배움은 평생교육이라 했다.

2006년 지역사회에서 <내 고장 알기>로 시작했던 문화체험활동에 이어

올해 꽃피는 춘삼월에 새맘 새 뜻으로 알차게 준비한 카툰캠퍼스 <만저봐>만의 성북동 프로젝트, 이들이 야심차게 서울 한복판을 누비고 다녔다.

 

어슬렁어슬렁~ 성북동 문화체험

언뜻 생각하면 한가로워 보이고, 여유롭게 다녔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과연 그럴까.

 

서울 한복판 광화문에 모여 있으니 주변의 온통 건물과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걸 보니 대환영인가 보다. 출발하기 전, 이원영 이사님, 일명 이이사의 해설이 시작된다.

 

광화문 명성황후 조난지 신무문 팔판정육점 말바위안내소

삼청공원 등산길 북정마을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이태준생가 길상사

여러분~ 오늘 코스는 앱에 올려놨으니 설명을 참고하여 보시면 됩니데이 ~

 

“건너편에 저기 보이시져. 청계천 길이거덩여. 그리고 여기 쭈욱 내려가믄 남대문 나오는 것 아시고, 서울역, 한강대교 나오는 거 아시고 , 자 이 건물 있잖아여. 이거 여기가 몇 번지게~여. 종로구 1번지, 여기가 종로구에 생긴 첫 건물이라 해서 종로구 1번집니다. 여기가 나중에 도로가 개편되면서 도로주소로 바뀌었지만 여기는 끝까지 종로구 1번지예요. 교보에서 이것만큼은 지켜야겠다고 하는데 교보에 대해서는 차차 살펴보시고 자 이동 하겠습니데이.”

가는 도중에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기자회견 하는 모습과

법인권사회연구소 주관으로 걸린 현수막 <평화의 소녀상> 플래카드도 보인다.

“저 위는 광화문을 찍을 때 가장 좋은 장소로 개방하지 않습니데이. 예전에는 불허했지만 지금은 허가되어 사진촬영도 가능하다고 합니데이. 그리고 이 도로 주변은 예전에는 온갖 관공서로 되어 있었어여. 지금은 대로 안에 언론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지만여.”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 경상도 언어라서 설명을 다는 귀담지 못해 아쉽다.

 

광화문에 다다르니 한복 입은 모습들이 자주 눈에 보인다. 잠시 멈췄다.

선왕조 도읍이었던 서울은 한나라의 수도로 4개의 산, 4대문과 4소성으로 이루고 있다.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 등이 있고, 서울의 진산은 북한산이다. 서울의 산 성곽은 군사목적이 아니고 동네 담벼락 같고, 군사적 요소로는 북한산과 남한산이며, 삼각산은 북한산 자체가 삼각산이다. 그리고 인왕산코스는 혜화동까지는 성곽 길로 되어 있고, 서울 성곽길 중에 청와대 뒷편은 3시 이전에 가야 출입이 가능하며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조선을 설립한 이성계는 도읍지 한양에 4개의 대문을 세우고 유교의 오상(五常)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따라 동쪽에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에 돈의문(敦義門), 남쪽에 숭례문(崇禮門), 북쪽에 숙정문(肅靖門)을 두고 도읍의 중앙에는 보신각(普信閣)을 세워 도읍의 기본형태를 갖췄다고 한다. 4개의 소문은 북문과 동문 사이에 혜화문, 동문과 남문 사이에 광희문, 남문과 서문 사이에 소의문, 서문과 북문 사이에 창의문을 두었다.

 

경복궁에 들어서며 나무가 별로 없는 이유를 묻는다.

자객의 침입을 막기 위함이며, 지붕에 뭣이 놓여있느냐에 따라 신분이 달라진다.

우리나라 궁에는 문이 2개, 중국은 3개로 차이점은 폐하와 황제로, 중국은 벽돌인 반면 우리나라는 돌과 화강암이 다르다고 했다. 인왕산 북한산도 돌덩이가 많고 성북동, 혜화동도 1970년대에는 주로 채석장이었다고 한다.

 

경복궁!!!

조선시대 건물로 사적 제 117호인 경복궁은 종로구 1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임금이 살던 궁과 나라의 대신들이 일을 의논하던 건물로 태조 4(1395)에 종묘 사직단과 함께 지어졌다. 이후 임진왜란 때에 불타 273년 동안 폐허로 있다가 쇄국정책을 펼치던 대원군이 7년여의 무리한 공사 끝에 다시 지어졌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 총독부 건물을 짓는다는 구실로 근정전 남쪽 전각들이 수난을 겪거나 철거당해 10여 채의 건물만이 남아 있다. 도성의 북쪽에 있다하여 북궐이라고도 불리었다.

 

또 별궁으로, 와룡동에 위치한 창덕궁(155)은 조선 제3대 임금인 태종 5(1405)에 지어졌다. 경복궁이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리자 3백여 년 간 조선왕실의 궁궐로 쓰이면서 또 다른 사건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국보인 인정전과 보물인 돈화문, 선정전, 대조전 등이 있고 천연기념물인 700년된 향나무와 600년 된 다래나무가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궁궐가운데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궁으로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드디어 아픔의 역사가 남아 있는 건청궁에 들어섰다.

조선 고종은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 친정체제를 구축하면서 정치적 자립의 일환으로 건청궁을 세웠다. 청일전쟁이 끝난 후 명성황후가 일본세력을 배척하자 일본공사 미우라가 주동이 되어 고종 32년(1895) 10월 8일(음력 8월20일)에 명성황후를 무참히 시해한 사건으로 이를 을미사변이라 한다.

곤녕합으로 명성황후가 1884년부터 1895년까지 침전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잠시 아픔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신무문(神武門)!!! 청와대가 바로 보인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출입하는 문으로 정문격인 광화문이 있다면 동쪽에는 건춘문, 서쪽에는 영추문, 북쪽에는 신무문이 있다. 현재는 광화문과 신무문을 통해서 경복궁을 출입할 수 있다고 한다. 신무문은 청와대 정문과 연결되는 문으로 최근에는 개방되고 있다. 공터가 많은 이유를 묻자 이전에는 수도방위사령부, 일명 수방사로 지금은 과천 남태령 고개로 이전했고 참고로 미군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수년전 동생이 수방사에서 군복무를 해서인지 느낌이 달랐다)

(청와대 정문을 뒤로하고 삼청공원 등산길로 이동하며 해설은 다시 시작된다).

횡단보도는 아무나 못 건너가며 직원들만 다니는 곳

고종과 김구가 연결된 백범일지를 읽어보라며 역사가 얽혀 있다고 했다.

 

 

 

삼청공원 등산길로 올라서니 이제 부터는 체력의 안배가 필요했다. 극기!! 그동안 나를 이기지 못해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 극기로 그동안의 어려움을 이겨낼 필요가 있었다.

<삼청공원 등산길-북정마을 사진>

이 코스와 곁들어서 알아야 할 것은

청계천과 혜화동인데 청계천은 광화문에서 우측으로 쭈욱 넘어가면 혜화동이 나오며 경복궁, 창경궁까지 나온다. 혜화동 로타리와 한성대교까지 나오고 한성대 입구부터 성북동이다. 성북동편에서 330번지 교보단지로 문화대기업이 모두 있다고 한다. 여운형이 암살당한 지역이기도 하다.

북정마을을 거쳐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에 머물렀다.

 

오셔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었어요.

어서 오셔요.

당신은 당신의 오실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당신의 오실 때는 나의 기다리는 때입니다. -오셔요 중

“조선 땅덩어리가 하나의 감옥이다.

그런데 어찌 불 땐 방에서 편안히 산단 말인가.” -심우장에서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잔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님의 침묵 중에서

“남향하면 바로 돌집*을 바라보는 게 될 터이니

차라리 볕이 좀 덜 들고 여름에 덥더라도 북향하는 게 낫겠다.“ -돌집: 조선총독부

“철천 승려를 합하여도 만해 한 사람을 당하지 못한다. 만해 한 사람을 아는 것이 다른 사람 만 명 아는 것보다 낫다. -벽초 홍명희-”

잃은 소 없건마는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 시 분명하다면 찾은들 지닐소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심우장-

“나는 돌에는 내 이름을 안 새깁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나의 이름을 새기면 새겼지 돌에다가 이름을 새기지 않겠습니다.”

각 민족의 독립 자결은 자존성(自存性)의 본능이요, 세계의 대세이며, 하늘이 찬동하는 바로서 전 인류의 앞날에 올 행복의 근원이다.

누가 이를 억제하고 누가 이것을 막을 것인가.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중

 

학창시절 꼭 외워야 했던 <님의 침묵>중의 한 구절은 생활 속에서도 읇조리던 한마디이기도 했다.

조선의 모파상이라 불리었던 월북작가 이태준의 생가를 찾았다. 상허 이태준이(1933년~ 1946년)살면서 많은 문학작품을 집필한 곳이다. 당호를 수연산방이라 하고 『달밤』, 『돌다리』, 『코스모스 피는 정원』,『황진이』 『왕자 호동』 등 주옥같은 작품을 저술하였기에, 이곳을 이태준 문학의 산실이라 부른다.

잠시 고택을 둘러본 후 다음 행선지 길상사로 향해 출발했다.

 

이곳을 찾아 가는데 아슬아슬한 옛날 골목들이 많아 마치 미로 찾는 느낌이고, 한참을 지나서야 끄트머리에 길상사가 있었다.

북악산각, 대원각. 삼청각, 청원각은 요정으로 이중에 대원각이 길상사라고 한다.

1997년 길상사를 창건한 이곳은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신 법정스님 유골을 모신 진영각이 있고, 무소유 사상에 감동한 김영한 여사가 보리심을 발하여 성북동의 대원각을 조건 없이 기증하였다고 한다.

공덕주 길상화 보살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 받아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회향을 생각하고 7천여 평의 대원각 터와 40여 동의 건물을 절로 만들어주기를 청하였고, 1997년 대원각이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창건되는 아름다운 법석에서 법정스님으로부터 염주 한 벌과 길상화 라는 불명을 받았다고 한다.

 

법정스님의 저서와 역서: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 <물소리 바람소리> <화엄경> <숫타니파타) 등 다수

 

 

길상사를 끝으로 둘러본 뒤 터널을 통해 원 위치에 도착한 만저봐 일행은

19254걸음 걷기+달리기 거리 11.9키로미더를 걸었다는 만보기를 보여주는 카툰캠퍼스 조희윤 대표의 한마디에 모두가 힘은 들었지만 알찬 첫 문화탐방을 자축하며 다음 성공을 위해 파이팅을 외쳤다.

고구마작가님,  만저봐와 함께한 생파.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shinyt53

노년의 인생이야기를 만화로, 세상 아름다운 마음으로 다양한 가치들과 함께 펼쳐가고 있습니다. 미담, 경험, 생명의 가치 등 올바른 인성이 함께하는 안전한 세상으로... shinyt53@cartoonfellow.org

신 용택톡톡 튀는 성북동의 문화해설 만저봐-이이사의 독특한 문화탐방, 체력과 함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