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에서 이태준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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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저봐’ 어슬렁팀과 성북동 투어에 나섰다. 광화문에 모여 경복궁을 지나 청와대 앞길로 사부작사부작 걷기 시작했다.

삼청공원과 말바위 전망대를 2시간쯤 오르내리다 드디어 성북동 비둘기 공원에 도착했다. 김광섭 시인의 시‘성북동 비둘기’의 배경지 ‘북정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월이 잠자고 있는 듯, 5,60년대의 집들과 골목이 그대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 골목골목을 누비다 문인들이 살았던 집들을 기웃거린다. 한용운 시인의 ‘심우장’을 둘러보고 소설가 이태준이 살았던 ‘수연산방’에 도착했다. ‘산속의 작은집’이라는 이름답게 아담하고 정갈스럽다. 집 앞에는 상허 이태준 가옥이라는 푯말이 있다. 그 시절 성북동에는 많은 문인들이 살았단다. 이산 김광섭, 구보 박태원,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집터가 고만고만 모여 있다. 달동네였던 이곳이 가난한 문인들이 살기엔 좋은 동네였나 보다.

그중에서도 이태준에 끌린 것은 글 모임을 지도해 주시는 부천대 민충환 교수님의 열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월북 작가 이태준이 해금되자마자 선생님은 그의 작품을 수집하기 위해 출생지인 철원과 살았던 집 성북동과 그가 다녔던 휘문고를 수도 없이 답사했다. 그렇게 발품을 팔아 <이태준 연구>라는 책을 쓰셨다. 오랜 시간 금기였던 그의 이름과 작품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 과정을 지켜보았기에 ‘수연산방’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수연산방’을 둘러본다.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이태준이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을 1999년부터 그의 증손녀가 찻집으로 개방해 운영하고 있었다. 원형을 그대로 살려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한옥의 멋을 간직하고 있다. 마당의 작은 정원에는 그가 애지중지 키웠다는 파초의 흔적도 보인다. 집 한쪽 벽에 사진 한 장이 눈에 띈다. 가족사진이다. 빛바랜 사진 속에는 이태준과 그의 아내,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기를 안고 있는 상허와 개구쟁이처럼 웃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단란하고 행복했을 가족의 일상이 그려진다.

이태준은 1904년 강원도 철원에서 보통학교 교관과 주사를 지낸 지식층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구한말 나라를 개혁하려고 개화당에 가담했던 아버지는 개혁에 실패하자 가족을 이끌고 블라디보스크로 간다. 이태준이 다섯 살쯤 아버지가 화병으로 죽고 얼마 뒤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자 고아가 된 그는 누이 둘과 함께 고향 철원의 친척집에 맡겨진다. 하지만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해 친척 어른의 구박을 견디다 못해 가출을 한다. 철원 봉명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 배재학당에 합격하지만 등록금이 없어 다니지 못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1921년 휘문고에 입학한다. 가난했던 그는 교내 청소를 하며 학비를 면제받기도 하고 책장사를 하며 수업료를 벌기도 하며 힘들게 학업을 이어갔다. 학예지 <휘문>의 학예부장을 맡고 기행문과 감상문 등의 작품을 실어 문학적 소양을 발휘하지만 1924년 동맹휴교 주모자로 몰려 퇴학당한다.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조선문단>에 소설 <오몽녀>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한다. 1927년 일본 조치대학 예과에 입학하지만 그 이듬해 자퇴하고 만다. 신문배달을 하며 학비를 벌어보았지만 가난한 고학생에게 대학생활은 궁핍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귀국 후 <개벽사>에 들어가 <학생>과 <신생>의 편집을 맡게 되고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된 그는 1930년 이화여전 음악과 출신의 아내 이순옥을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수연산방에 걸려있는 상허 이태준의 가족사진

1934년 성북동 248번지에 집을 짓고 작품 활동에 몰두한다. 마당의 정원과 돌담에 놓인 돌멩이 하나에도 그의 정성이 안 들어간 곳이 없었다. 이곳에서 「황진이」 「달밤」 「코스모스 피는 정원」 「돌다리」 「왕자호동」 등을 집필했다. 그의 삶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으리라. 그러나 1948년 그렇게 정성스레 지은 집을 버리고 돌연 가족과 함께 월북하고 만다.

그 후 그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월북 초기에는 ‘조선의 모파상’이라 불리며 극진한 대접을 받은 듯했다. 그러나 남한에서의 ‘구인회’ 활동과 일제 말 친일작품을 쓴 이력으로 사상검증을 받고 결국 숙청당했다고 한다. 본인은 물론 그의 자식들까지 연좌제로 묶여 숙청당하거나 추방당했다.

이상, 박태원, 정지용 등과 함께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구인회’에 들어가고 <문장>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우리 문학사에 적지 않은 공적을 남긴 상허 이태준.

아름답고 수려한 문장으로 시인 정지용과 쌍벽을 이루었던 천재 문장가는 결국 사망 시기도 밝혀지지 않은 채 소리 소문 없이 가족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글쓰기를 시작하며 교과서처럼 읽었던 이태준의 ‘문장 강화’와 해방 기념 조선 문학상을 받은 단편집 「해방 전후」를 읽으며 그의 문학세계에 빠져들고 있다. 이 소설에는 그의 등단작 「오목녀」를 비롯해 좌파 이념을 선택하게 되는 계기가 된 8.15 전후의 일들을 ‘한 작가의 수기’로 풀어낸 「해방 전후」와 「고향」 「달밤」 「복덕방」 「까마귀」 「밤길」 「돌다리」 등 빼어난 단편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비운의 작가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을 ‘수연산방’에 발을 디딘 것만으로도 그를 만난 듯 반갑다. 언제 한가로운 시간에 작가들의 사랑방이었을 툇마루와 사랑채에서 그의 작품을 감상하며 차를 마시고 싶다.

 

 

 

hanregina

겉모습과 달리 빈틈 많고 털털한 사람. 17년째 수필을 공부하면서 수필집 '가시연 빅토리아' 겨우 한권 냈다. 10년동안 부천시청 복사골기자로 활동하다가 이제 시민 만화기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내 주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카툰으로 표현하고 싶어 '열공' 중이다. hanregina@cartoonfello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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