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의 한술줍쇼 – 부천혜림원 임성현 원장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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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혜림원!  너무나 유명한 곳이지요.

부천혜림원, 부천혜림요양원은 당연히 부천에 있고요

기독교정신으로 섬기고 나누고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복지공간으로,

만 18세 미만의 지적장애 1,2,3급 장애인

또는 지적장애 1급의 중증장애인이 입주할 수 있는 복지시설이라고 합니다.

 

지적장애아 역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기에

이들이 소외되거나 방치된다면

우리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 설립자 故 림병덕 목사님의 말씀 중 –

 

가정에서 생활할 수 없는 지적장애인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사명을 실천하는 시설이라고 혜림원 홈페이지에 있네요.

 

 

제가 만난 분은

바로 부천혜림원 원장님이신 임성현 원장님이신데요,

하시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존경스러우신 분이죠.

늘 멀리서만 뵈다가 이렇게 가까이서 뵙게 되어 매우 영광이었습니다.

 

 

 

 

the 사람

 

   성함이?

임성현 (소띠)

소사3동, 토박이예요.

   아~~부천 토박이시군요.

부모님께서 6.25때 월남하셨어요.

남초 29횐데, 전학가서 소사초 4회 졸업생이예요.

당시는 원해서 전학가는게 아니라 새로 세운 학교로 몇명씩 전학을 보내고 했어요.

 

 

the 부천

 

    원장님은 부천이 고향이시네요~

   부천을 한마디로 (                ) 다~  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부천은 ( 위성도시 or 베드타운 )다!

 

어릴적에는 좋은 기억이 많죠. 논길로 학교도 다녔고…

지금 한신아파트 자리, 소사구청 쪽이 다 논길, 냇가였어요.

도시화 되면서 잃어버린 모습이지만 정말 아름다운 추억이죠.

 

   원장님은 부천은 살기가 어떻다고 생각하셔요?

고향이라 편안해요. 지금은 복잡한 도시지만요.

   복잡하다는 것은요?

1년 열 두달 공사가 많아서요. 다니는게 불편하고 복잡해요.

 

 

 

 

the 일

   원장님, 하시는 일은요?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복지시설이죠.

장애인 중에서도 중증 지적발달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일이예요.

    그 일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공식적으로 89년부터요.

    그 일을 하게된 계기가 있다면요?

아버님이 이북에서 월남하셨어요.

6.25동란때죠.

내가 듣기로 이북 평양신학교를 나오셨어요.

‘최초의 신학교’이고 아마 한경직목사님도 거긴 출신이라고 들었는데요.

신앙인이시니까 더 그러셨던것 같은데, 아버님이 전쟁고아들이 마음쓰이셔서 

소사성육원이라고 아동복지시설을 만들어서 전쟁고아들과 함께하셨어요.

정부예산도 없이요.

덕분에 저희 7남매는 고아같이 자랐죠. 하~(쓴웃음이지만 매우 순수하게 보임)

 

그리고 76년 혜림원으로 지적발달장애인을 위한 시설로 자리잡혔는데요.

그때 저는 사명~ 이런거 몰랐지요.

군대갔다와서 87년 캐나다로 이민을 갔어요.

영주권도 얻고

 

   아~ 연고가 있으셨어요?

네, 막내누가가 오래전 이민가서 초청했어요

2년 후 잠시 다니러 왔다가 결혼을 하게 됐어요.

   오~~ 첫눈에 불꽃이 튀신거군요?

하하~ 네 그랬어요.

   미인이신듯요.

네~~쫌. 하하~~

결혼하고 다시 캐나다로 가려고 했는데…

장인어른과 와이프도 신앙심이 좋았어요.

장인어른이 목사님이시거든요. 하~

암튼 다 포기하고 다시 한국으로 왔지요.

그때부터 혜림원 일을 하게되었어요.

   아~ 이민권까지 포기하고..어찌보면 어려운길을 선택하셨는데 후회는 없으셔요?

네~ 후회는 없어요.

오히려 그땐 몰랐는데 세월이 갈수록 더 보람이 있어요.

당시는 사회적으로나 시설적으로나 복지 이런 게 참 열악했어요.

하나 하나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죠.

   그랬군요. 참 어려운 시기에 누군가는 시작해야 하는 소중한 일을 하셨네요.

네~ 당시는 정부가 복지 이런게 아직 많이 부족했어요.

책임지려하지 않았죠.

솔직히 저는 부족했어요.

지금도 저는 어린 선생님들께 배우거든요.

모든게 부족하고 열악한 상황에서

어린 선생님들은 365일 24시간 천사예요.

 

당시도 그랬어요.

그 열악한 시설과 상황에서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적인 헌신과 봉사가

지금의 복지시설, 그리고 복지사회를 이끌어 왔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복지사들도 권리를 말합니다.

하나의 사람이거든요.

가족도 감당하기 힘든 일을 하는데

대단하지 않아요?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그냥 당연한 건 아니죠.

혜림원에는 200여명이 있어요.

부천엔 130명쯤,

나머지는 장봉도에 있는데요

안 와보셨나?

   네~ 한번도 못가봐서 항상 가보고싶었어요.

장봉도는 형이 운영했는데

고생하다가 혈액암으로 얼마 전 세상을 떠났어요.

 

    아고~(숙연해짐…) 원장님께서 이 일을 하시게 된 것은

   아버님이 하신 것을 단지 이어서 한 것 만은 아니겠죠?

 

그렇죠 하나님의 섭리였던 거 같아요.

특히, 신영복 선생님을 만난게 큰 힘과 동기가 되었다고 할까

순간 순간마다 버티게도 하고

   (신영복 선생님이 또 등장하네요~

   정말 훌륭하시고 많은 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셨다는 걸 알수 있네요)

 

 

성공회대에 편입했는데

사회복지학을 들을 때 신영복 샘을 만났어요.

끝나면 느티나무 밑에서 땅탁구도 치고 감방얘기도 듣고

   와~ 성공회대 대단하네요. 감방에 계셨던 분을 교수로 초빙한거네요.

그렇죠. 당시 이재정총장님이

그러니까 지금 교육감님이시죠.

감옥에서 나오신 신영복 선생님을 학교로 모셨죠.

선생님의 철학과 소신을 인정한거죠.

당시 급여처우는 낮았어요.

 

   

 

    만약에 원장님께서 다른 일을 하셨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까요

본래 기계공학, 그리고 경영학도 전공했거든요

아마 돈 버는 일을 하지 않았을까요?

사업수완도 있고 적성도 맞고 야심도 있었어요.

이민 가서 성공했을 것 같아요. 하하~

 

 

the 인생

 

   원장님이 생각하시는 인생은 (              ) 다

한마디로 안되는 거 같아요.

인생, 음….

자기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겪어보니

너무 예상치 못한 일도 많고

사람의 마음이 요동을 쳐요.

 

그래서 다른사람한테 뭐라고 하면 안되요

‘자기’가 잘해야지

변화 이런것도 욕할게 없어요.

우리는 그 사람도 아니고, 상황도 다 모르고.

저마다 이해타산도 다르고요.

  

딸이 둘 있는데요, 89년, 92년생

그런데 같은 부모, 같은 환경에서 자랐어도 둘이 많이 다르거든요.

   아~~ 맞는 말씀이네요~~

 

 

the 행복

 

   현재 행복지수는요?

지난 1년 간 힘든 한 해를 보냈어요.

여러가지로..

그러나 순간 순간 나쁘진 않았어요.

한 7, 8 쯤

   아~ 그러면 행복하신거네요.

   그 일을 하신다는 것 자체가 존경스러우신데

   또 행복하시다니 더욱 존경 스럽습니다요

 

어린 직원들에게 늘 배워요

케어, 서비스 참여, 지원 등 굉장히 어렵고

영역도 다양한데요

이 일을 직업으로 선택해서 한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이 일은 단지 직업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거든요.

   요즘 참 자기 살기도 각박한 세상인데도 그런 선생님들이 있군요.

네~ 우리 혜림원에는 많아요.

 

 

    인생후배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요?

적게 벌면 적게 써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

남과 비교하는데서 갈등이라는게 오는거든요, 불평의 시작이 되고요.

자기만의 재미나고 의미있는 일을 한다면 좋겠어요.

거창고등학교 십계명 아세요?

남이 가는 길을 가지 말라고 했어요.

저도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창업하라!  고~

너도 나도 공무원하려고 하는데

꼭 공무원이 행복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면에서는 성직자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기도 하거든요.

   맞아요 하하~

창업해서 이익을 또 사회환원도 하고 살면

얼마나 멋져요

 

그런 분이 부천에 있어요.

   아~ 누구신데요?

정인조 이사장님이죠…부천희망재단 이사장님이신데

딱 그런 분이예요.

   아~~ 저도 존경하는 분인데요

   다음 릴레이 한술줍죠에서 만나뵈야겠어요.

 

 

신영복 선생님이 그랬어요

나침판의 끝은 항상 떨린다고

떨림이 멈추는 순간 나침판의 기능이 없어진다는 거죠.

복지시설, 복지사들이

명심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장애인직업재활 현장에서는 이런 표어가 있어요.

“일이 없으면 삶이 없다.”

 

노인복지시설에서도 베드에서는 식사를 못하게 합니다.

힘들지만 그럴수록 더 원칙이라는게 필요합니다.

 

유럽에 캠프힐이라고 있어요

지적장애인공동체인데

유기농재배, 소셜펀드, 사회적기금마련 등을 하는데

자선과 동정의 대상이 아닌

장애인당사자로서 장애인복지에 대한 참여도를 높이고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장애인당사자의 선택권과 결정권을 보장하는

자립생활이념이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확산되고 보급되고 있어요.

 

유럽 같은 복지선진국들은

1950년대에 이미 탈시설화 정책으로 전환하고

자립생활이념을 장애인복지의 패러다임으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캠프힐(Camphill)’

   1940년대 칼콤에 의해 설립된 캠프힐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취지 아래 설립되어

   북아일랜드와 잉글랜드 전역에 51개의 하우스를 가진 생활시설.

 

신입교사 연수시 휠체어는 물론이고

기저귀를 차보게도 합니다.

그런 작은 것에서부터 자존감이 지켜지기도, 무너지기도 하거든요.

도와주고 동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입장이예요. 동일한 입장이란, 

우산을 씌워주는게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입장에서

진정한 관계가 맺어지는거거든요.

 

   

     임성현 원장님과의 인터뷰에서 무척 숙연해지는 오드리였습니다.

    끝이 떨리는 남친반 바늘처럼

   그리고, 같은 입장에 서는 관계처럼

   지금 하고 있는 일 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잘 살아보고 싶습니다.

   

   <끝>

 

#혜림원 #임성현 #한술줍쇼 #세종가 #신영복

 

오드리

만화, 저널, 시민, 공익, 진실, 전통시장, 청년, 변화, 노인, 장애인, 커피, 가을, 비, 사람, 그리고 부천~ 을 좋아하는 평범한 부천시민 noahne@cartoonfello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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