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찾아서 ⑪ – 엄마아빠 결혼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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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제대로 진행하면

하고싶은 말이 가장 많을

우리 엄마.

 

결혼 전 25년의 엄마의 삶보다

결혼 후 아빠와 함께 살아온 29년의 삶,

살아온 날들만큼 혹은 그 이상을 함께 늙어가게 될 주인공.

 

‘엄마, 진짜로 하고싶은 말은 2차 인터뷰에서 하자

아껴둬, 아껴둬‘

하고 엄마를 다독이며

29년전 엄마아빠의 결혼식에 관한

유쾌발랄 상쾌통쾌 인터뷰를 시작했다.

 

 엄마 결혼을 한마디로?

 

 결혼식은 나에게 축복이었다

 엄마, 너무 식상해~”

결혼식은 나에게 코걸이였다

 (빵터짐)

 아니다, 결혼식은 나에게 코뚜레였다?

(뒤로 자빠짐)

 코 이렇게 탁 껴가지고

아무것도 못했잖아!

 

 

 

엄마아빠 맨 처음 어떻게 만나셨어요?

 

중매로 만났죠.

 

 첫 중매자리는 어땠는지?

 

 잠실 올림픽 다방에서 만났어요.

 

 다방이란 단어 진짜 오랜만이네요.

아빠 첫인상은 어땠나요?

 

 아빠는 대추 방망이 같이 또랑또랑 했죠.

피부는 거무튀튀한데 아주 야무져보였지.

 

 첫눈에 맘에 드셨어요?

 처음 만나면서는 그냥 그랬는데 (풉 웃음 터짐ㅋㅋㅋㅋㅋㅋㅋ)

교제하면서 정이 들었지요.

 

우린 20번도 못 만나고 결혼했을거야.

 

 헐~ 그때는 그렇게

짧게 만나고 결혼이 가능했다구요?

 

 아빠는 청주에 근무했고

엄마는 수원에 근무해서

기차로 왔다갔다 했지요.

기차시간 놓치면 안된다고 맨날 기차역에서 빠이빠이~ 했었지

 

결혼식을 했던 날에 대해 들려주세요.

 

 1989년 5월 14일 청주 청석예식장에서 했어요.

 

시집가던날 기분은?

 

 가슴이 벅차면서도 복잡한 마음이었죠.

 

왜?

 

 제가 스물 다섯에 결혼을 했어요.

그 당시엔 결혼 적령기여서 제가 다니던 직장생활 (무려 삼성전자!!!!!!)

하던 중에도 직장을 그만뒀었으니까요.

 

일을 계속 하고 싶었나요?

 

 하고 싶었는데

삼성에서 그때 당시는 기혼자는 결혼 전에 보통 그만두는게 일반적이였어요.

 

지금도 항상 아쉬움이 남아있으시겠네요?

 

 그렇지요

지금까지 삼성에 다녔으면 연봉이 겁나게 그냥~!!!!@!@!@!@(ㅋㅋㅋㅋㅋㅋ)

아쉬움이 크지요.

 

아참~

신혼여행에 갔는데 거기서 첫째가 생겼단 소문이 있어요.

(부끄부끄)

 

 첫째 허니문 베이비를 만들었어요. 제주에서

아! 신혼여행 하니까 생각나는게 있는데

제주도에서 10개 커플이 같이 버스를 타고 다녔어요.

 

버스에서 가이드가

노래부를 사람!!! 나오라고 했는데 아무도 안나서는 거에요.

근데 아빠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더니

엄마를 지목했다???!?!?!?!?

 

본인도 평소에 엄마 노래 한번도 못들어봤으면서

엄마를 지목해가지고

버스에서 마침 ‘당신의 마음’이라는 노래를 불렀어

그 때 환호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지.

 

  오~ 아빠 박력^^

 

 그럼~ 그때 아빠가 점수를 많이 땄지.

 

결혼하고는 신혼생활이 어땠나요?

 

 신접살림은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에서 시작했지요.

근데 아빠가 결혼하자마자 서울로 발령이 나서 한달은 떨어져 살았답니다.

그때는 막내고모, 할머니, 엄마, 아빠 넷이서 한집에서 같이 살았지요.

 

시어머니, 시누이랑 함께 사느라 조금은 불편했겠네요.

 응 그럼.

근데 아빠가 말이야

시누이랑 시어머니랑 살던 불편함을 알았는지

나를 퇴근길에 불러내서

포장마차에서 멍게 한 접시 먹고~

석화도 한 접시 먹고~

그렇게 먹고 들어와서 임신했으니까 또 저녁까지 먹고

그런 로맨스를 즐겼던 기억이 있답니다.

 

울 아빠 신혼시절 상당한 로맨틱 가이였군요!

그 때 아빠랑 결혼을 안했더라면

이런 재밌는 인터뷰도 못했겠네요.

이 딸이 이 세상에 못나왔겠군요. 껄껄

 

 당근빠떼루죠~~(맞춤법 ㅠㅠ 세종대왕님 죄송해요)

 

그렇게 재밌게 알콩달콩 살다가

언니를 출산했고

금슬이 얼마나 좋았던지

바로 씩씩한 보영이가 들어섰지

 

 (언니랑 저는 연년생이랍니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둘째까진 아주 많이 축복받았는데

셋째부터는 많이 아쉬워했었지

 

왜?

 

 세 번째는 혹시나~ 아들일까 했는데

역시나! 딸이 태어나가지고

 

아빠가 서운하다고 그랬어?!!

 

 (잠시 침묵)

 

성모바다가 울음바다가 됬었지.

 

왜?

 고모,이모,할머니,아빠,엄마 다 울었어.

수원이(동생) 태어나던 날이 4월 1일이였는데

셋째가 딸이 태어났다고 하니까 만우절이라고

다들 거짓말이라면서 안믿었었지

 

엄마가 많이 속상했겠네.

29년 살아오면서

아빠한테 가장 감사한 것을 한가지만 꼽아본다면?

 

 엄마 모시고 또 처자식 먹여살리면서

37년동안 아무 별탈없이 직장생활 너무 아름답게 마무리 잘해줬고

굉장히 자상하고 가정적인 사람, 그것에 감사하지요.

 

딸들이 결혼을 하게 된다면 해주고싶은 말?

 엄마가 여러모로 봤을 때

결혼은 현.실.이.다

현실을 빨리 직시하라는 거지요.

 

사랑도 중요하지만

경제적인 것도 따라야 하고

배우자의 능력도 따라줘야되지요!

 

여자가 능력을 키운다음에 결혼을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을

조바심내지 않고 기다렸으면 좋겠다는 말씀~

 

결혼은 어쨌든 하라는거네요?

 당연히 결혼은 해야지

 

나한테는 결혼하지 말라면서요

 

 늦추라는 얘기지

어차피 예전만큼 얘기 많이 낳는 시대도 아니고

고학력자로서 하고 싶은 일 많이 하고

사회에도 이바지하고 그래야지요?

 

 

 인터뷰후기 “엄마는 엄마다”

 

난 엄마가 할머니를 모시고 살 때

혼자 끙끙 앓던 모습도 보았고

살아오면서 힘들어하는 모습도 많이 봤다.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자신이 희생했어도 그것을 힘들다고 잘 말하지 않는

엄마는 엄마다.

 

나는 천방지축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지만

언젠가는 엄마아빠를 보면서 꼭 따뜻하고 단란한

그런 가정의 울타리는 꼭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어떤 행복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우리 가족은 나에게 주기 때문에.

 

앞으로 함께하실 많은 날 중,

왜 결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때 기억하시라!

 

엄마와 아빠의 결혼은 결국

엄마아빠의 결혼식을 인터뷰 기사로 이렇게 정리해주는

척척박사 예쁜 둘째 딸을 만나기 위한 행운이였음을!

 

 

 

 

 

tjqhdud1001

글쓰기와 독서, 여행 등 좋아하는 것이 넘쳐나 행복한 사람이다. 지금은 채움에서 내가 사는 지역을 좀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드는 상상력을 실험하고 있다.

서보영아빠를 찾아서 ⑪ – 엄마아빠 결혼하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