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다락 사장님의 소개가 없었다면
아마도 이곳은 영영 몰랐을 곳인지도 모른다.
시내에 나갈 일이 있을 때 늘 지나다니는 동선에 위치한 곳인데도 소개받기 전까진 몰랐었다.
건물 안쪽에 쑥 들어가 있는 곳이라 도로 쪽에 입간판을 따로 세워두긴 했지만
선뜻 들어가기엔 좀 음침해 보이는 곳에 있어 사전 정보 없이는 가기가 쉽지 않다.

디저트 카페인 ‘테레사‘s 파이’는 할머니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이다.
레몬향이 가득 느껴지는 이곳의 마들렌이 너무 맛있다며
명주다락 사장님이 테레사 사장님께 선물 받은 마들렌을 내게 맛보라며 주셨는데 맛이 꽤 괜찮았었다. 이곳의 메뉴들도 아마 다 맛있을 거라며 추천해주셨는데
다만 말씀하시는 걸 아주 많이 좋아하셔서 가게 되면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셔야 할꺼라는 조언도 웃으며 덧붙여주셨다.

카페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디저트 카페이니 뭔가 더 기대가 되어
궁금한 마음에 소개받고 며칠 지나지 않아 가보았다.
기대감을 갖고 오긴 했으나, 구석진 곳에 있어서 들어가는 입구부터 문열기가 망설여지긴 했다. 불은 켜져있지만 영업은 하는건지 알 수 없는 인기척도 없는 조용한 분위기에
다시 돌아갈까 하다가 용기내어 들어갔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주방쪽에서는 베이킹 하고 계시는 듯한 소리와 함께 통화하고 계시는 듯한 사장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동 거품기 소리가 계속 들려서 잠깐이라도 소리가 멎으면 인기척을 내려고 타이밍만 찾고 있던 차에 용케도 사장님이 손님이 왔다는 걸 감지해주셨다.

동화 속에서 수프를 끓이고 있거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할머니가 연상되는, 첫 인상의 사장님. 나이에도 불구하고 소녀같은 분이셨다.
머랭을 치느라 누가 오는 줄도 몰랐다며 미안해하시며 나를 반겨주었다.

사장님께 파이 하나를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무화과 파이를 권해주셔서 커피와 함께 주문했다.
정성스럽게 담겨나온 따뜻한 무화과 파이.
아…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을만큼…그 파이는 지금껏 먹어보지 못한 맛의 파이였다.
홈메이드 느낌이 나는 그리 달지도 않은 맛에 고소한 버터향에다 오독오독 씹히는 무화과씨가 들어간 필링의 맛이 특별한 매력이 있는 굉장히 고급스러운 맛의 파이였다.
커피와 함께 하면 더 없이 최고의 디저트였던 무화과 파이.
가족들 생일엔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평범한 케익을 사느니 여기서 홀케잌이나 홀파이를 사면 참 근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맛있다며 말씀드렸더니 대화의 물꼬를 틀 타이밍을 기다리고 계셨던 듯
아예 내 곁으로 오셔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꺼내놓으셨다.
이곳의 메뉴들은 미국에서 살던 시절에 집에서 만들어 먹던 미국가정식 파이들인데 최근에야 메뉴들을 다 정리했다며 메뉴판을 넘겨가며 거기에 있는 메뉴 하나하나를 내게 다 설명해주셨다.
이건 우리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파이.
이건 며느리 생일때 늘 선물해주는 케이크. 이건 손주들이 좋아하는 파이 등등…모든 메뉴에 사장님의 추억과 가족에 대한 사랑과 레시피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유복한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남다른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온 사장님. 물질적으로 정서적으로 꽤나 풍요로운 가정에서 자라서 그런지 같은 세대에서 흔치 않은 추억들을 많이 갖고 계셨다. 결혼을 하면서도 변함없이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누리고는 살았지만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았다는 사장님.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의 돌파구가 베이킹이셨고 지금 이렇게 자신의 가게를 만들고 이곳에서 요리하며 지내는 지금의 시간들이 당신 인생의 황금기같다고 하셨다.
요리하는 동안만큼은 나 자신을 찾는 것 같아 행복하고, 그렇게 만든 자신의 요리를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맛있게 먹어줄 때가 너무나 즐겁다하셨다.
메뉴판에도 일일이 메뉴들에 대한 스토리나 재료들이 다 설명이 되어있는데, 이곳 파이의 특징이자 장점이라면 가족들에게 만들어줄 때와 똑같이 유기농이나 친환경이나 품이 많이 들어가는 원재료를 사용한다는 것.
다소 비싸게 느껴지는 파이의 가격이 재료에 대한 설명이나 과정들을 듣고 보면 금새 수긍이 될만큼 재료에 대한 소신과 원칙이 남다르다.

처음 방문한 그 날 내가 주문한 건 파이 한 조각이었는데, 맛보라며 이것저것 계속 내오시는 바람에 무려 세 조각을 먹었다.
이곳의 파이가 그리 달지는 않아도 그래도 파이다보니 혼자서 세 조각은 상당히 무리였는데, 다 못먹어도 괜찮다고 남기라고 하시며 그래도 맛은 봐야된다고 이것저것 내오시는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에서 엄마의 마음을 느꼈었다.
그 때먹은 무화과파이, 레몬타르트, 체리파이의 맛이 꽤 오랫동안 생각이 나서
한 번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해서 타지에서도 주문에 들어온다는 사장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었다.
이곳 파이가 먹고 싶고 생각날 때가 많았는데, 늘 다른 카페들도 가봐야하니 못가다가
한참만에야 다시 갔다.
그 때도 여전히 가게엔 손님이 없었다.
아직도 이곳은 누군가의 소개가 없으면 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란 게 못내 아쉽다.
회전율이 좋지 않다보니 그 날은 냉동실에 보관중이던 파이를 데워서 내주셨는데,
여전히 이곳만의 고급스러운 파이의 맛은 느껴졌지만,
방금 만들어낸 최고의 파이맛을 기억하던 내 미각엔 살짝 충족이 되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사실 이 글을 쓰는 것도 조금은 망설여진다.
내 글을 읽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파이 전문점인데 냉동실에서 꺼내오는 파이를 보게 된다면, 아무리 따뜻하게 데워져 나오더라도 좀 실망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곳의 파이나 케이크를 본연의 맛으로 즐기려면
홀사이즈로 미리 예약주문 하는 것.
생일케이크나 선물용으로 이곳의 파이나 케이크를 가져간다면 아마도 꽤나 특별하고 센스있는 선물이 될 것 같다.

평생의 시간들 중 파이를 굽고 있는 혼자만의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는 사장님이 만들어내는 이 곳의 특별한 파이들.
이 특별한 맛을 알아줄 사람들이 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갈 때마다 사람이 좀 많고 북적여서 언제든 갓 구워낸 파이들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

강릉에 예쁘고 맛있는 디저트 카페들이 참 많이 있긴 하지만,
젊은 열정과 패기와 자신감으로 만들어낸 그들과는 또 다른 깊이가 느껴지는 열정으로
인생의 황혼기에 새로운 시작을 하신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이곳.
오랜 세월과 연륜이 만들어낸 이곳의 홈메이드 디저트 맛은 어디서도 쉽게 만나볼 순 없을 듯하다.
운 좋게 갓 구운 파이를 맛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기를.
제대로된 파이 맛은 못봤더라도,
현재의 시간을 인생의 황금기라고 누구에게라도 자신있게 말하는 사장님을 보며
인생의 맛은 이런거구나 싶은 간접경험은 해볼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