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중도객잔을 뒤로 하고 중호도협을 향해 출발한다. 아침이 되었건만 깊은 산중의 산자락 마을은 아직도 잠들어 있다. 트레킹 내내 만나게 되는 계단식 논과 집들. 이런 척박한 오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삶을 이어온 나시족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실감할 수 있는 모습들이다.

합파설산 위로 펼쳐지는 드넓은 푸른 하늘, 그 위에 몰려드는 엄청난 구름. 어느 순간 푸른 하늘에 나타나 흐르다가 소멸되는 하얀 구름 같은 우리들의 생(生). 그 길목에서 하루를 보낸 호도협의 여정이 먼 훗날 어떤 의미로 남을 것인지.

보들레르 시 ‘이방인’의 마지막 시구가 떠오른다.

나는 저 구름을 사랑한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구름을 사랑한다.

보라, 다시 보라. 저 불가사의한 구름을.

절벽 길에서 만나는 관음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는 청량함 그 자체다. 이 물줄기는 절벽의 높이가 2,000m나 되는 깊은 계곡을 따라 산 아래 금사강으로 흘러서 들어간다. 호도협 주민들은 폭포에 파이프를 설치해서 생명수로 사용하고 있다.

차마고도는 겨울에도 영상을 유지하기 때문에 길이 얼지 않아 트레킹이 가능하며, 4월이면 산자락 아래 유채 밭에서는 바람을 타고 일렁이는 노란 물결이 장관이다.

일행들과 떨어져 나 홀로 걷다보면 마치 이름 모를 외계의 행성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해발 3,000m 되는 차마고도 길가에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작은 사원이 숨어 있다. 절해고도나 다름없는 이곳에서는 어떤 신앙이라도 나시족 삶의 전부가 되었을 터.

걸으면서 보이는 설산의 청정한 봉우리, 해가 들지 않는 깊은 산중의 적막, 실같이 가늘게 이어진 길, 도도하게 흐르는 물은 태고의 정서를 하염없이 자아내게 하면서 나그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아침 햇살 때문에 합파설산(5,396m)의 봉우리들은 맞은 편 옥룡설산(5,596m) 산 그림자로 그윽하다. 골짜기는 푸른 연기같은 이내로 넘쳐 저물녘의 연못 같다. 서로 마주보고 선 두 산은 마치 북한산의 원효봉과 의상봉처럼 친구 같은 사이로 느껴진다. 합파설산 자락의 호두나무숲과 대나무숲을 지나면 티나객잔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오솔길이 나온다. 땅에 닿을 듯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내려와야 티나객잔에 도착한다.

1박 2일 16km의 치열했던 트레킹이 끝나는 순간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 시간을 마음껏 누린 우리는 축복받은 존재들이다.

하지만 길을 걸으며 마냥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천오백년 전부터 집을 떠나 거칠고 황량한 차마고도에서 고단한 삶의 여정을 살아온 마방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평생을 생명을 담보로 힘겹게 걷고 걸었던 길.

한과 눈물과 애환의 길.

그러나 그들이 걸었던 길고 긴 노정의 끝은 결국 가족이 기다리는 집이 아니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은 집으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차마고도는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