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너머 대밭에서 죽순을 씹다

 

5월 어느날, 한려수도 미지의 섬 통영 오곡도를 향해 떠난다.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비경을 담은 비진도와 용초도, 학림도와 연화도 사이에 쑥스러운 듯 고개를 내민 오곡도는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아 제대로 된 방파제조차 하나 없는 자그마한 섬이다. 하지만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섬 곳곳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천혜의 비경을 속에 품고 있다. 예부터 섬에 까마귀가 많아 까마귀 오(烏)자를 사용했다는 설과 섬의 형세가 하늘을 나는 까마귀를 닮아 오(烏)자를 사용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지며, 많은 비렁 계곡인 강정이 있다 하여 계곡 곡(谷)자를 따서 ‘오곡’(烏谷)이라 하였다는 지명 유래가 전해진다. 통영 사람들은 이 섬에 오소리가 많이 서식했다 하여 지금도 ‘오시리’라고 부른다.

척포항에서 바다 택시 ‘동성호’를 타고 오곡도를 향해 출발한다. 오곡도는 통영 산양읍 척포 마동마을에서 뱃길로 10여 분 거리의 가까운 섬이지만 정기 여객선은 다니지 않는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남쪽 가장자리에 자리잡은 오곡도는 섬 전역에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해안 곳곳에 갯바위 낚시터가 있어 낚시꾼들에게는 잘 알려진 섬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는 오곡도에는 친구 별장이 있다. 평소 낚시를 좋아하던 친구가 이곳에 낚시 와서 섬의 아름다움에 반해 조그만 섬마을의 빈집 한 채를 사서 손수 땀 흘리며 리모델링을 한 후 지기들을 불러 모아 정분을 나누는 곳이다.

오곡도에는 작은 마을과 큰 마을이 있다. 큰 마을에서 작은 마을까지는 쉬엄쉬엄 20분이면 갈 수 있고, 한창 번성기 때는 40가구 넘게 살았다고 한다. 현재 작은 마을에는 2가구 2명, 큰 마을에는 2가구 3명이 살고 있다.

배에서 내려 선착장에서 마을로 가는 길은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것부터 시작된다. 급경사를 이룬 계단을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다. 땅을 보고 수 십 번 절을 하면 동백나무 터널이 다가와 우리를 반긴다. 동백꽃이 떨어질 즈음 이 작은 숲길은 핏빛으로 변한다. 그 때 다시 와야지.

전망 좋은 산 중턱에 자리한 친구 토담집 방문만 열면 대나무로 사이로 비진도, 한산도, 용초도, 연대도 등의 여러 섬들이 고개를 내밀고 섬을 처음 방문한 우리들에게 편히 쉬다 가라고 반겨준다.

집을 둘러싼 대밭에서 “쏴아”하는 댓잎 소리에 담긴 죽향이 온몸에 스며드니 마음이 여유롭고 평온해진다. 토담집에 낚시로 건져 올린 싱싱한 횟감으로 약주 한 잔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벌써 입에 군침이 돌고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짐을 부리자마자 선착장 방파제로 내려와 낚시를 시작한다. 섬에 오니 마음도 싱싱해진다.

 

​비가 내린 다음날 집 아침 해풍이 불자 근처 대밭에서 대나무들이 춤을 춘다. 덩달아 죽향이 울타리를 넘어 집 안으로 들어온다. 죽향을 따라 울타리 넘어 대밭으로 가니 죽순이 지천이다. 어느 기자가 쓴 요리책 ‘대밭에서 죽순을 씹다’라는 책 제목이 딱 어울리는 순간이다.

토담집을 병풍처럼 둘러싼 대나무와 동백나무, 후박나무의 푸르름과 섬 어느 곳을 둘러 봐도 막힘없이 볼 수 있는 한려수도의 빼어난 풍광에 넋을 잃는다.

다음날 작은 마을을 향해 마실을 나선다. 큰 마을에서 제일 전망이 좋은 집 앞을 지난다. 이 집은 친구 동생집이다.

큰 마을에서 작은 마을로 넘어가는 숲길은 정겨운 오솔길이다. 유유자적 한껏 여유를 부리면서 걷는다. 작은 마을 뒷편 넓은 노지에는 오곡도 특산물인 방풍이 자라고 있다. 여러해살이인 방풍은 한방의 약재로 많이 쓰이는데 중풍을 예방하고 감기와 두통, 발한과 거담 치료에 효과가 탁월하다. 그래서인지 통영시장에서 오곡도 방풍이 나오면 서로 사려고 난리가 난다.

작은 마을 뒷산에 서면 비진도가 보인다. 물이 빠지면 안 섬과 바깥 섬 2개의 섬을 금빛 해변이 아슬아슬하게 이어놓는다. 학림초등학교 동화분교가 있었던 폐교에는 명상수련원이 들어서 있다. 작은 마을은 곳곳이 폐가다. 사람들이 사는 곳보다 빈집이 더 많다. 두 마을을 이어주는 오솔길은 어제 비 먹어 촉촉하다. 이 숲길은 맑은 댓잎과 솔바람, 살랑대는 해풍으로 그득하다.

마을 언덕 너머 몽돌 밭은 오곡도의 숨겨진 비경이다. 둥글둥글한 몽돌과 모나지 않은 큰 바위들이 해변을 가득 메우고 있어 섬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한려수도 푸른 바다의 정기를 한 몸에 받는다로 핑계로 몽돌해변으로 출조하여 제법 쏠쏠하게 물고기를 건져 올린다.

여행이란 그런 것 아닐까.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찾고 그 힘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 것.

눈길 닿는 곳 모두가 비경인 오곡도에서 2박 3일간 일탈을 마음껏 누리고 ​비움과 사색의 묘미를 즐긴 후 산양만으로 돌아가는 바다 택시에 몸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