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시에 있는 기형도 문학관을 다녀왔다. 수년 전부터 지방에 근무하는 아들을 픽업하러 광명 KTX 역을 수시로 드나들면서도 기형도 문학관을 몰랐나 했다. 알고 보니 2017년에 건립되었단다. 문학관은 신식 건물답게 깨끗하고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기형도 시인의 누나가 관장으로 있는데 시인이 살았던 집터에서 조금 비켜지었단다. 원래의 집터 위로는 다리가 놓아지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문학관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기형도 시인의 사진이었다. 우수에 찬 눈빛이 나를 확 끌어들였다. 순수하면서도 어두움이 공존하는 눈빛이었다. 사실 나는 기형도 시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다. 알고 있다면 그의 시 ‘엄마 걱정’이나 ‘빈집’ 정도였다. 문학관을 둘러보며 그의 삶과 시와 행적을 더듬는다. 1960년생, 한 살 어린 내 남동생과 동갑이니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 그의 삶은 내 어린 시절과 비슷했다. 시인처럼 서울 근교가 아니라 소읍이었지만 가난하긴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 대학교육까지 받은 우리 아버지도 병든 몸으로 방구석에 누워계셨고 엄마가 보따리 행상을 하며 가족을 먹여 살렸다. 시인의 ‘엄마 걱정’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그래도 지금은 그런 추억거리라도 있어 행복하다.

‘나리 나리 개나리’ ‘가을 무덤‘에서 젊은 나이에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삶을 등진 남동생이 생각나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 살 차이라고 지지 않고 맞먹으려고 해 티격태격 싸우기도 했지만 서울 살이에서는 서로 의지가 되었던 든든한 동생이었다. 그 일로 우리 가족은 아직도 우울한 집단 최면에 걸려있다. 동생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금기다. 어쩌다 동생의 친구라도 만나면 엄마는 몇날 며칠 식음을 끊고 기도실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그의 가족들은 어찌 견뎠을까. 가구나 전자제품은 하나의 선택으로 10년을 좌우한다지만 사람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평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의 시 ‘위험한 가계’를 읽으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아니 일부러 구겨 넣고 꺼내지 않았던 유년시절의 무의식이 떠올라 버렸다. 내 안에 켜켜이 쌓여있던 아픔들이 고백성사처럼 터져 나왔다. 그 시절엔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가난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고 그래도 앞으로의 희망의 끈을 바라보며 살았다. 시인처럼 똑똑한 아이가 아니어서 무뎠는지도 모르겠다. 아니지 그 시대 사회라는 것에 눈감아 버려서, 적절히 타협하며 나 편한 대로 살았을 수도 있다. 전시실에 걸려있는 그의 생애를 보면 어린 시절부터 가슴 깊이 상처를 묻어두었지만 공부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모범생으로 살았다. 자신 안에서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음울과 허무가 쑥쑥 자라는 모습을 속수무책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기형도 문학관을 다녀온 뒤 그의 시 90여 편을 찾아 읽어 보았다. 거의가 죽음과 허무와 우울로 가득 차있다. 마치 그에게 전염된 듯 나도 그 세계에 빠져들어 한참을 허우적거렸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그는 29년의 짧은 인생으로 막을 내렸지만 살아있는 우리는 아직도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피우느라 매일이 전쟁터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했지만 그는 죽음으로 자신을 사랑했고 그의 시로 다시 태어났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이제부터 <오래된 서적>그의 검은 페이지를 펼쳐볼 것이다. 우울하지만 묘하게 끌어들이는 그의 문학적 순수함을 배우고 싶어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던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집>

그가 간지 30년이 된 지금 이제 그는 빈집에 홀로 갇혀있지 않았다.

그의 시는 외로운 사람들의 적막한 영혼을 흔들고 문학관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