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처음처럼’의 글씨를 쓰신 분하면 소주 애호가가 아닌 사람도 다 아는 신영복 선생님.  이 시대의 마지막 양심이라 불리는 선생님을 모신다는 흥분으로 밤잠을 설쳤습니다.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강의하시다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쓰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감옥에 들어가기 전 서오릉에서 만난 소년들과의 우정을 그린 ‘청구회의 추억’을 읽으며 선생님의 따뜻한 인간미에 내 삶을 돌이켜보게 하는 거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처음 뵌 선생님의 모습도 책의 느낌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담한 키와 백발 섞인 머리와 안경 너머로 빛나는 눈빛이 무척 편안하고 단아했습니다.

부천시청 시의회 강당을 꽉 메운 청중들 앞에서 선생님은 독자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감옥 이야기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수감자들이 감옥에 가는 것을 학교에 간다고 달리 표현하는데, 자신은 60년 동안 학교에 있었다.’고 소개하셨습니다. 1941년에 태어나 초등학교 입학 전의 7년을 제외하고 첫 20년은 학창시절과 대학 강단에 있었고 두 번째 20년은 감옥살이를 했으며, 현재의 20년은 출옥 후 다시 성공회대학 강단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제일 황금기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선생님에게 감옥에 얽힌 에피소드나 이야기가 많았겠지요. 감옥생활을 할 때에는 독서도 많은 제한을 받고, 집필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던 시절이라 자신이 부모님에게 보내는 엽서를 통하여 여러 이야기를 썼던 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저서의 밑거름이 되었답니다.

한 번은 직업이 목수인 사람이 감옥에 들어와 집을 그리는데 제일 먼저 주춧돌, 기둥, 지붕 순으로 그리더랍니다. 보통 우리는 지붕, 기둥 순으로 그리는데 말이지요. 그 그림을 보며 오랜 수감생활을 통해 나름대로 자신을 많이 개조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던 자신이 부끄러웠답니다.

“하나의 나무는 잎, 줄기, 뿌리로 이루어지지만, 우리 문학은 수목형이 아닌 넝쿨식물처럼 땅으로 기어가다 뿌리는 내리는 숲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선생님은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늘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 같이” 부천 문학이 발전해 나가길 바란다는 덕담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지금도 ‘청구회의 추억’을 읽을 때 마다 고인이 되신 선생님을 떠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