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인문로드를 걸었다. 양귀자 소설가의 ‘원미동사람들’의 주 배경인 원미동을 출발해 원미산 둘레길을 넘어 정지용 시인이 거주했던 소사동으로 넘어가는 코스다. 부천에 살고 있으면서도 7~80년대 문학계를 주름잡던 양귀자의 ‘원미동사람들’을 읽지 않았었다. 그러다 TV 드라마로 방영되고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나서야 책을 사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그녀가 쓴 소설들을 다 사서 읽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부천작가회의에서 주최하는 ‘작가와의 만남’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때 부천을 빛낸 작가로 양귀자소설가를 초대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 초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녀는 잊혀갔다.

2017년 부천이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되었다. 시인 변영로, 정지용, 소설가 양귀자, 동요작가 목일신, 펄벅 등 부천출신이거나 부천에서 사신 분들의 힘이다. 그중 양귀자소설가는 9년 가까이 원미동에 거주하며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했다. 그녀의 수필이나 소설에 부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일 거다. 부천에서 수주 변영로 시인과 목일신 동요작가, 펄벅기념사업 등은 성대히 치르고 있지만 양귀자 소설가는 묻혀있었다. 문학창의도시가 되고 부천의 문인들이 재조명되면서 양귀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양귀자 소설가는 1955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문예장학생으로 원광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잠시 교사생활을 하다가 1978년 ‘다시 시작하는 아침’(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그 후 부천으로 이사와 소시민의 삶을 다룬 ‘원미동 사람들’을 발표해 큰 인기를 얻었다.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 희망,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숨은 꽃, 천년의 사랑, 곰 이야기, 모순 등 많은 소설을 발표하고 유주현문학상과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소설‘ 원미동사람들’은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고 ‘모순’, ‘나는 소망한다…’ 등은 드라마로도 제작되며 8, 9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는 작품 활동이 뜸해져 그의 신작 소설을 접할 수 없었다.

부천출신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마련한 이번 인문路드는 원미동사람들 조각공원(원미 어울마당)에서 출발해 소설 속 배경지인 무궁화연립과 강노인의 땅, 장미연립들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소설의 주 무대였던 무궁화연립은 현대식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그렇게 지키려고 애썼던 강노인의 밭도 공원으로 변해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세탁소나 동네 주변이 있어 소설 속 이웃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들리는 듯 정겨웠다.

인문로드 투어를 모두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서재 구석에 잠자고 있던 양귀자 소설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읽었을 땐 잘 와 닿지 않았던 원미동 23통 동네 전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지금은 표지석만 덩그러니 놓여있지만 길 오른편에 강노인 밭과 은혜네가 살던 무궁화연립, 형제슈퍼가 있고, 길 왼편으론 원미지물포와 써니전자, 행복사진관, 강남부동산과 정육점, 싱싱 청과물이 죽 늘어선 시장골목도 보인다.

 

원미동 시인 몽달씨와 형제슈퍼 김반장, 행복사진관 엄씨와 으악새 할아버지, 등장인물 모두가 생존을 위해 아귀다툼도 하지만 서로 보듬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따뜻한 시선이 글 곳곳에 묻어있다. 가난하지만 국수 한 그릇도 나누어 먹던 그 시절, 우리는 다 그렇게 살았다.

숨은 꽃, 천년의 사랑, 모순 등, 다시 읽어도 그녀의 글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80년대 젊었던 시절로 되돌아간 듯 소설에 푹 빠져 밤을 새웠다.

소설 속 밤무대 가수 은자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부르던 ‘한계령’이 귓전에서 맴돈다.

“이 산 전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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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과 달리 빈틈 많고 털털한 사람. 17년째 수필을 공부하면서 수필집 '가시연 빅토리아' 겨우 한권 냈다. 10년동안 부천시청 복사골기자로 활동하다가 이제 시민 만화기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내 주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카툰으로 표현하고 싶어 '열공' 중이다. hanregina@cartoonfellow.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