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시작되었으니 이제부턴 그야말로 여름이다. 아직 본격적인 무더위는 오지 않았지만 여름엔 그래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서늘한 영화 한 편 정도는 봐줘야 한다. 그래서 겸사겸사 고른 음반은 영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Ascenseur Pour L’echafaud)의 사운드 트랙이다. 비록 공포영화는 아니지만 ‘사형대’가 자아내는 음침한 분위기를 통해 잠시나마 한여름의 더위를 잊기에 충분하다. 자 그럼 지금부터 사형수의 무거운 발걸음을 함께 사형대로 향하는 길고 음침한 복도를 따라 들어가 보자.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Ascenseur Pour L’echafaud)는 28세의 젊은 루이 말(Louis Malle)이 감독하고 잔 모로우(Jeanne Moreau)가 주연한 최초의 누벨바그 영화다.

젊고 매력적인 여인 플로랑스와 그녀의 정부(情夫) 줄리앙은 플로랑스의 나이 든 남편(줄리앙의 직장 상사)을 살해하고 사랑의 도피를 계획한다. 그러나 완벽할 것 같았던 범행의 알리바이는 두 사람과는 아무런 상관없던 가난한 연인 루이와 베로니카가 벌인 또 다른 살인 사건과 얽히고 설켜 차질을 빚는다. 거기에 줄리앙이 범행 과정에서 하게 된 어이없는 실수로 차단된 엘리베이터의 전원은 결말에 대한 불안한 암시가 된다. 결국 줄리앙과 플로랑스는 살인에 대한 자백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영화 최고의 장면이자 반전은 현상액 속에서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는 한 장의 사진이다. 이 사진으로 결국 플로랑스와 줄리앙은 살인죄를 벗어날 수 없게 되고 영화는 파별로 끝난다. 사랑의 순간을 담은 사진이 사랑의 파멸을 가져온다. 진부한 역설을 루이 말은 뛰어난 영상미로 승화 시켰다.

“나는 곧 늙겠지. 그러나 사진 속에서 우리는 같이 있어. 거기 어딘가에서 같이… 결코 우리는 서로 떨어질 수 없어.”

플로랑스는 현상액 속에서 차츰 선명해지는 사진을 바라보며 독백처럼 속삭인다. 사랑이란 결코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걸 말하려는 듯 둘은 오직 한 장의 사진 속에서만 행복하다.

영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영화의 명성만큼 OST 역시 유명하다. 우선 주목할 점은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가 남긴 단 하나의 유일한 영화 음악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제작 과정도 극적이다.

루이 말은 마일즈 데이비스를 초청한 후 줄거리조차 알려주지 않은 채 연주를 주문했고 이를 단번에 이해한 마일즈 데이비스는 이틀 동안 주어진 단 몇 시간 만에 즉흥으로 녹음을 끝냈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모던 재즈가 한편의 누벨바그와 완벽히 합쳐지는 순간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음악과 영상이 한 테이크로 움직이는 영화가 탄생했다는 뜻이다. 어쩌면 마일즈 데이비스가 남긴 가장 위대한 앨범 Kind OF Blue로 시작된 모달 재즈가 이미 이곳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에서 실험되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흑백 영상이 마치 청각으로 현현하는 듯한  마일즈 데이비스의 뮤트 트럼펫과 자크 루시에 트리오(Jacques Loussier Trio) 초기 베이시스트인 피에르 미쉘로(Pierre Michelot)의 베이스 소리는 사형대로 올라가는 누군가의 무거운 인기척이라도 되는 듯 러닝타임 73분 45초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무겁게 압박한다.

그 중에서도 내가 뽑은 최고의 트랙은 Nuit sur les champs-Elysees(상젤리제의 밤)이다.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줄리앙을 찾아 상젤리제의 밤을 헤매던 여 주인공 잔 모로가 전화기를 붙들고 통화할 때 들려오는 곡이다.

대부분의 영화 삽입곡들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의 OST는 그야말로 온전한 영화음악으로서 즐길 때 더욱 가치를 발한다. 음반으로만 듣는 것 보다는 가능하면 영화를 보면서, 영상과 함께 즐기라는 뜻이다. 재즈 문외한이나 마일즈 데이비스의 팬이 아니더라도 틀림없이 엄지를 세우게 될 것이다.